[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 콜로라도 사막에서 만난 ‘행복한’ 암환자

입력 2014-03-01 01:37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임계점을 넘어갔다. 분노가 터졌다.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다 땀과 섞여 눈가를 쓰리게 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멍하니 있다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 한두 번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전거 바퀴 펑크였다. 두 시간 동안 수리에 매달렸는데…. 그것도 섭씨 47.7도 미국 콜로라도 사막 한가운데서 말이다.

가시밭길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사막 도로다. 바람을 타고 날아든 단단하고 뾰족한 가시들이 도로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튜브나 여분의 펑크 패치도 없다. 주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광야에 섰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기도한 뒤 도로가로 나갔다.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서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흔들었고, 바로 첫 차가 멈춰 섰다.

흰색 밴이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59세 메리라고 했다. 그녀는 나의 상황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서 트렁크에 짐을 실어요”라고 했다. 수리를 위해 자전거 숍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사막 한가운데에서 무슨 방법을 찾는단 말인가? 오후 2시를 넘긴 시각, 메리는 아직 점심조차 챙기지 못한 나를 웬디스로 데리고 가 햄버거 세트를 주문해 주었다.

그리곤 근처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자전거 숍 정보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안타깝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메리가 작심한 듯 물었다.

“아까 목적지가 어디라고 했죠?”

“덴버 한인교회요.”

“좋아요. 갑시다!”

지금까지 두 시간 넘게 돌아다닌 그녀다. 그런데 80㎞가 떨어진 곳에 또 데려다 주겠단다. 그리고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나 실은 암 환자예요. 놀랐죠? 그렇게 안 보이죠? 6개월 전에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고, 18일 후에 다시 2차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요. 지금은 딸이 집으로 와 절 간호해 주고 있어요. 다행히 생명에 위협을 줄 만큼은 아니에요.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무척 당황하고, 놀랬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난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비밀스러운 뭔가를 말하는 거라는 걸 느꼈어요. 그랬기 때문에 솔직히 좌절하지 않았어요. 늘 웃으려고 애썼고, 매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졌어요. 주일에 교회에 가더라도 환자로서 특별대우를 기대하기보다 성가대나 주방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들과 똑같이 섬겼어요. 그리스도인이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요?”

암이라는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처음 만난 청년의 ‘작은 고난’에 동참하는 그녀의 여유, 활짝 웃는 여유. 암 때문에 새롭게 보게 된 인생을 감사하게 살고 있다는 당당한 고백에 그녀의 짧은 흰색머리가 이제야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병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 병으로 인해 어떻게 딸과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변곡점을 만들어주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값진 은혜였다. 덴버에 도착했을 때 메리는 크게 팔을 벌렸다. 나를 뜨겁게 안아주었다.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녀의 품은 따뜻했다. 우리 인생에 환한 미소를 지을 날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암이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단지 예수님이 있을 뿐이었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