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형제 실형 확정] 최태원 징역 4년… 大法 “계열사 자금 사적 유용 엄벌”
입력 2014-02-28 02:32
판결 이유와 의미
SK그룹 최태원(54) 회장과 최재원(51) 부회장의 실형이 나란히 확정됐다. 재벌 총수 형제에게 상고심에서까지 모두 실형이 선고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최 회장 형제는 2년에 걸친 재판에서 다양한 전략을 들고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7일 회삿돈 450억원을 빼돌려 개인 선물투자에 사용한 혐의 등으로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 부회장에게는 징역 3년6개월이 선고됐다. 최 회장 형제는 특별사면 등의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 한 앞으로 3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횡령 범행을 공모했다고 본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의 회장, 부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사적 이익을 위해 유용한 행위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원홍 통한 마지막 재판 흔들기 실패=대법원은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원홍(53·수감 중)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추가심리가 필요하다는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전 고문은 2008년 말 최 회장 형제로부터 투자위탁금 명목으로 문제가 된 회삿돈 450억원을 송금 받은 인물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도피했다가 지난해 9월 항소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대만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다.
김 전 고문은 최 회장 측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앞서 증거로 제출됐던 통화 녹취록에서 김 전 고문은 ‘최 회장 형제는 450억원 송금에 대해 몰랐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 회장 측의 무죄 주장과 일치했다. 때문에 최 회장 측은 항소심에서 김 전 고문을 증인으로 불러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고문 없이도 최 회장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봤고,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진술 번복에도 최 회장 횡령은 유죄=최 회장 측은 법정에서 수차례 전략을 바꿨다. 1심 재판에서는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자신 몰래 저지른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최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말을 바꿨다. 펀드 출자를 지시한 건 맞지만 정상적인 펀드였고 450억원 송금에는 관여치 않았다는 것이다. 항소심 말미에는 김 전 고문에게 속아서 범행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재계 서열 3위 그룹 회장이 무조건 속았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고 꾸짖었다.
반면 최 부회장은 1심에서 범행을 자백했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다시 말을 바꿔 “1심에서는 형을 위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은 “무죄인 최재원이 무죄인 최태원을 보호하기 위해 자백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최 부회장에게도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최 회장 형제의 진술 번복은 법원에 ‘반성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재판에서 취한 태도들을 보면 과연 재판을 수행하는 법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최 회장은 2009년부터 강화된 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라 실형을 확정 받은 첫 재벌총수 사례가 됐다. 대법원 양형기준은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 범죄 경우 최소 징역 4년 이상을 선고토록 하고 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을 법정 구속하며 “최 회장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계에 미칠 영향을 양형에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벌 총수라 하더라도 양형기준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법원의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