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아주머니, 마지막 집세입니다’… 70만원 든 봉투 남기고 생활고 비관 세 모녀 동반 자살
입력 2014-02-28 03:38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오던 박모(60·여)씨가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건 26일 밤이었다. 당뇨병 투병을 포기한 큰딸(35), 카드 빚에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딸(32)도 함께였다. 나란히 누워 숨진 세 모녀 옆에 흰 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겉면에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봉투에는 현금 70만원이 들어 있었다.
세 모녀가 살던 곳은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의 단독주택 지하방이다. 이불 두 채를 깔면 더 이상 공간이 없는 비좁은 방에는 누렇게 뜬 벽지 위로 박씨 부부와 두 딸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화목해 보이는 사진 속 가족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불행은 남편이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고혈압과 당뇨가 심했던 큰딸은 병원비 부담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박씨가 근처 놀이공원 식당에서 일하고 둘째가 종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하며 아슬아슬하게 지내왔다.
그래도 월 38만원 집세와 매달 20만원 정도인 전기료 수도료 등 공과금은 밀린 적 없었는데, 한 달 전 박씨가 식당일을 마치고 귀가하다 길에 넘어져 크게 다쳤다. 식당일을 그만두게 됐고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끊겼다. 막다른 길에 몰려 한 달간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세 모녀 시신은 집주인 임모(73)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임씨는 “1주일 전부터 방안에서 텔레비전 소리만 나고 인기척이 없어 의심스러운 생각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방 창문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고, 바닥에 놓인 그릇에는 번개탄을 피운 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방문도 침대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기르던 고양이도 모녀 옆에서 함께 죽어 있었다. 봉투에 적힌 글을 본 임씨는 “정말 착한 양반이었는데…”라고 했다.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27일 “외부인 출입이나 타살 흔적이 없고 번개탄을 피운 점 등으로 미뤄 동반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