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신뢰 추락 가장 가슴 아팠어요”… 한국 첫 여성 구약학자 이경숙 이화여대 교수 퇴임

입력 2014-02-28 01:34 수정 2014-02-28 14:16


한국 최초의 여성 구약학자인 이경숙(66) 박사가 25년간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난 25일 퇴임해 명예교수가 된 그는 아쉬움 대신 깊은 감사를 표하며 청년 신학도들과 후배 여성신학자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7일 이대 신학대학원장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이화라는 아름다운 터전에서 좋은 후배들과 함께 즐겁게 연구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건강하게 퇴임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정말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신학대학원장과 부총장까지 지냈지만 그는 겸손했다. 평생 후배 신학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던 시절을 회상할 때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30여년간 신학자로 살아가며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가 추락해 젊은 세대들로부터 교회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 결과 교회와 신학계가 점점 더 멀어진 것 같아요.”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급성장한 결과 너무 많은 돈과 권력이 교회에 몰렸으며, 교회가 점점 제국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목회자들에게 목양능력뿐 아니라 경영능력과 정치적 지도력까지 요구되면서 점점 교회와 목회의 본질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생들의 자존감과 교회에 대한 기대감까지 낮추게 됐다고 분석했다. “1989년 처음 가르쳤던 신학생들은 사역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나고 해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기가 죽어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계의 위기에 대해 그는 ‘본질’과 ‘상황’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교회와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목양 이외의 역할을 요구하지 말고, 목회자 스스로도 목회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신학자들도 외국 신학의 방법론과 담론을 답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한국 상황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내의 여성차별에 대한 솔직한 우려와 조언도 전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공동회장과 중앙위원을 한국 여성신학자가 맡는 시대가 됐지만, 아직도 주일예배 시간에 설교하는 여성 목회자는 많지 않다”며 “그럼에도 여성 신학자들은 더 많은 노력과 끈기로 주어진 자리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당분간 2016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성서학회(SBL) 한국 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1880년 설립된 SBL은 전 세계 저명한 성서신학자의 모임으로 90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성서학회(SABS) 한국대표였던 이 교수는 2012년 SBL 서울총회를 유치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