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세계, 고대 언어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조연호 시집 ‘암흑향’

입력 2014-02-28 01:34


조연호(45·사진) 시인은 흔히 한국시단의 가장 난해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린다. 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해하다는 말 자체에 자신의 작품 가치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는 시를 수많은 정신적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학의 총제로 인식하기에, 시를 두고 어렵다거나 혹은 쉽다거나하는 평가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시를 읽는 통증이 있어야 인간의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그의 신작 시집 ‘암흑향’(민음사)은 어떤 언어적 통증을 수반하고 있을까. 우선 ‘암흑향’은 지옥을 뜻하는 디스토피아를 의미하는데, 그는 이번 시집에서 유토피아의 대척점에 있는 지옥의 풍경을 형상화하기 위해 한자와 한문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다. 시 제목만 봐도 ‘귀축(鬼畜)의 말이 우리를 의붓되게 하는 자로서’ ‘택방(澤邦)을 지나 벽한(僻寒)에 들며’ ‘속애(俗愛) 비옵는 자를’ 등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분명 우리 언어 속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정신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우리 언어 안에서의 한자, 한문의 간극과 허구성이 나를 매료시킨다”는 말로 설명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한자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일기에 나에 대해 더러운 말을 쓰고 잤다/ 비벼 끈 무릎에 다시 불을 넣고/ 돌아가는 팽이의 눈을 생월생시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있다/ 머리가 부서진 작은 기독상(基督像)을 암수로 나눠 품고/ 밤의 무익함을 악충의 길이로 재보는 것에게도 악명은 있다”(‘귀축(鬼畜)의 말이 우리를 의붓되게 하는 자로서’ 부분)

조연호의 시를 의미로 따라 읽는다면 우매한 일이 될 것이다. 그는 한자와 더불어 사라진 세계, 즉 고대의 언어가 이렇게 발음되고 써졌을 거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의 시집은 비전(秘傳)처럼 내려오는 ‘고대 문헌학’의 복원 그 자체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