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박근혜표 474 비전의 성공조건
입력 2014-02-28 01:38
“기득권 반발 넘어서고 정치권도 협조해야 … 공무원부터 연금 깎아라”
능력 있는 청년과 여성들이 마음껏 일하고 가계부채·사교육비·주거비 불안 없이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 삼성그룹 입사를 위해 스펙 쌓기에 열 올리지 않아도 취업이 잘 되고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튼튼한 안전판이 작동하고 있어 노후걱정이 없는 나라. 서비스업과 제조업 두 바퀴로 경제가 굴러가는 나라. 박근혜정부가 제시하는 3년 뒤 대한민국 모습이다. 이대로만 된다면야 바랄 게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잠재성장률 4%에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474 비전’을 제시했다. 며칠 전에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만 읊어대던 것에 비하면 목표가 구체화되긴 했는데 영 미덥지가 않다.
최근 지표상으로 경기회복이 가시화되고 있고, 부동산 시장에도 온기가 돌고 있지만 체감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당장 2017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저성장 늪에 빠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지난달 고용률은 64.4%로 목표치와 괴리도 크다. 현재 10만개인 청년 일자리가 3년 뒤에는 50만개로, 29만개인 여성 일자리는 150만개로 늘어난다는데 아직은 꿈 같은 얘기다. 1인당 국민소득 역시 지난해 2만4000달러에 불과한데 4만 달러 목표는 한참 멀게만 느껴진다.
과거처럼 ‘성장=고용’ 등식이 성립하지도 않는다. 제조업 설비 자동화와 대기업들의 공장 해외 이전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고용이 늘지 않으면 국민소득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474 비전이 이명박정부의 실패한 ‘747(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공약’만큼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우리 경제는 향후 3∼4년이 고비다. 수출 의존형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닥친 가운데 고령화 등 소리 없는 재앙이 다가오고 있어 선진경제로 발돋움하느냐 중진국 함정에 빠지느냐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르륵 미끄러져 지탱하지 못한다.
하지만 장밋빛 계획을 ‘뚝딱’ 해결해줄 요술방망이는 없다. 의료·관광·금융 등 5대 유망 서비스산업 빅뱅이나 규제완화, 벤처붐 조성 등 대부분 정책은 역대 정부들이 추진했던 것들이다. 과거 정부의 공무원들이 방법을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다. 밥그릇을 쥔 기득권 집단의 반발을 뛰어넘지 못하고 정치권에 막혀 좌절된 탓이다.
474 비전이 성공하려면 기득권을 가진 계층과 정치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의료산업 활성화를 추진하자 벌써부터 공공부문 노조와 의료계의 반발이 시작되고 있다. ‘자본주의 4.0’의 저자인 아나톨 칼레츠키는 “자본주의의 전환이 가장 절실할 때 이를 달성하기가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며 “옛 시스템에서 잘 먹고 잘 살았던 이익집단들은 변화를 막으려고 맹렬히 싸운다”고 했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노조와 공무원들의 반발을 뚫고 원칙을 지켜내 영국병을 치유하고 공공부문 개혁을 이뤄냈다.
박 대통령은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해서 천추의 한을 남겨선 안 된다며 연일 개혁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런데 ‘2인 3각’이 되어 같이 뛰어야 할 장관들에게선 치열함이 안 느껴진다. 관료들은 경제혁신을 위한 실행과제를 100가지나 만들면서 국가재정을 축내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선은 별 의지를 안 보였지만 대통령이 담화문에 집어넣었다. 공기업 개혁을 한다면서 방만 경영의 주범인 낙하산 인사 방지 대책은 청와대가 없애 버렸다. 이러면서 무슨 경제혁신을 하겠다는 건지 믿음이 안 간다. 비정상 관행을 정상화해서 퀀텀 점프를 하려면 공무원과 정치권부터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순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