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 130년 최초 선교사 알렌 이야기] (4) 한국근대사 전면에 등장한 알렌

입력 2014-02-28 01:34


최고 권력자 민영익 살려 ‘명의’ 입소문

갑신정변 발생


알렌은 1884년 9월 서울에 도착해 외국 공사관들의 공의로 임명됐다. 집도 미국공사관 옆에 얻었고, 생활은 순탄했다. 하지만 그해 알렌은 인생을 바꿀 큰일을 겪으며 일약 한국 근대사에 등장한다.

사건은 겨울밤에 일어났다. 친일 개화파들은 청나라 중심의 인물과 보수파를 제거하기로 했다. 그들은 근대식 우정국 건물이 박동(현재 종로구 견지동)에 세워지는 12월 4일 일대 정변을 일으켰다. 그 유명한 갑신정변이다.

당시 개화파들은 친일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개화기의 거물 윤치호 역시 청국과의 지긋지긋한 예속관계를 지탄하며 일본을 모델로 한 개화를 하자는 데 동조할 정도였다. 개화파는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성공한 모범 케이스라고 여겨 이를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개화파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날 저녁 독일의 외교고문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열린 축하연회에는 보수파의 거물 민영익 민병석 한규직과 일본인 몇 사람 그리고 푸트 미국공사 등 외국 공사들이 참석했다. 일본 공사 다케조에는 개인 문제를 이유로 불참했다. 참 묘한 일이었다. 여기서 연회에 음모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화파는 자객들을 미리 숨어 있게 한 뒤 연회가 진행되는 동안 근처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나오는 보수파들을 다 척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밤 10시쯤 우정국 북창 밖에서 돌연 “불이야”라는 소리가 났다.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당황한 참석자들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들이 피신하는 혼란을 타서 자객들은 보수파의 거두 민영익을 집중 공격했다. 얼마 후 민영익은 온 몸에 심한 자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됐다. 민영익은 몸의 여러 곳에 동맥이 끊어졌고, 머리 등 일곱 군데를 칼로 깊이 찔려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묄렌도르프와 푸트 공사는 죽어가는 민영익을 우선 안채로 급히 데리고 들어갔다. 아주 과감하고 용감한 결정이었다. 자칫하면 개화파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급히 알렌을 불렀다. 개화파는 난을 일으키면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우궁으로 이거시키고 있었고, 윤치호가 달려갔더니 고종은 잔뜩 겁에 질려 미국 호위병들만 찾고 있었다.

알렌의 극적인 등장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한 것은 뜻밖의 사건이었다. 당시 민영익은 조선에서 왕 다음의 권력자였다. 알렌은 새 집을 말끔히 단장하고 편안한 밤을 맞으려 준비하던 중 갑자기 호출을 받았다. 미국 호위병들에 둘러싸여 새벽 한 시쯤 도착했을 때는 한의사 10여명이 이미 민영익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혈하기 위해 시커먼 송진을 상처 여기저기에 쑤셔넣고 있었다.

알렌이 들어서자 그들은 당장 적대감을 드러냈다. 생전 접해보지 못한 서양의 의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민영익의 상태는 매우 위독했고, 알력다툼을 하며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묄렌도르프는 집사를 시켜 한의사들을 완력으로 몰아냈다. 묄렌도르프는 알렌을 위해 한의사들을 내보냈지만 실상 알렌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는 속으로 한의사들이 민영익을 잘 고치기를 바랐다. 만약 자신이 외과 수술을 했는데도 민영익이 죽는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로 절벽 위에 밀려 세워진 것 같았다. 만일 수술이 실패한다면 그가 대표하고 있는 기독교는 한국 땅에서 뿌리박기 힘들 것이고 미국의 국가 이미지도 실추될 것이다. 당장 그의 가족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알렌은 걱정이 앞섰다. 수술 집도 중에 민영익이 죽게 되면 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고민은 잠시뿐 알렌은 결단을 내렸다. 알렌의 증조부는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분이었다. 그런 용기와 결단력이 알렌의 피 속에 흐르고 있었다. 그는 전능자 하나님께 손 모아 기도하고는 수술가방을 열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수술이 성공하고 기독교와 미국이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복음이 전파되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수술을 시작했다. 칼로 찔린 상처 스물일곱 군데를 꿰맸다. 혈관 한 군데는 심을 박았다.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거즈와 붕대를 감았다. 장시간의 수술이었다. 온몸을 붕대로 감은 민영익은 마치 미라 같았다. 수술은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손을 뗀 알렌은 격해 흐느꼈다. 수술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민영익을 완쾌시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들었고, 그 감동이 벅찼기 때문이다. 알렌은 감사기도를 드렸다. 한국에서 몇 천년을 이어오던 한방의술 말고 전혀 새로운 서양의술이 시험대에 오른 그 결정적 순간에 알렌은 무사히 시험을 치렀고, 인정을 받았다.

민영익이 패혈증의 위험을 이기고 완쾌하기까지 만 3개월이 걸렸다. 그 어간 가끔 열이 막 올라 위험할 때도 있었다. 알고 보니 민영익의 지인들이 몸에 좋다는 생각에 알렌 몰래 가끔 인삼과 개고기탕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알렌이 용하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져갔고 마침내 고종에게까지 들어갔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