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1975년 발견된 신안 앞바다 보물선엔 中 화폐 700만개가 실려있었다는데…
입력 2014-02-28 01:39
해저 보물선에 숨겨진 놀라운 세계사/랜달 사사키/도서출판 공명
1900년 그리스의 안티키테라 섬 인근 해역에서 해면을 채취하며 먹고 살던 잠수부가 청동 인물 조각상 하나를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청동상이 실려 있던 배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발굴을 시작해 결국 보물선을 찾았다. 바다 속 유물의 존재 및 발굴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너도 나도 보물선 발굴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학자들이 참여한 건 한참 뒤다. 미국 텍사스의 A&M 대학교 조지 배스 교수팀이 1960년 청동기 시대 해저 보물선 케이프 켈리도냐호를 발굴하면서 드디어 ‘수중고고학’이란 분야가 시작된다. 이 책은 그의 제자인 일본인 박사 랜달 사사키가 수중고고학을 일본인에게 소개하기 위해 쓴 걸 번역했다.
수중고고학 연구자들이 어떻게 바다 속 보물을 발굴했고, 인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갔는지 보여주는 내용은 흥미진진하다. 1994년 포르투갈 테주강 하구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선 후추 생강 시나몬 등이 잔뜩 나왔는데, 이는 당시 인도와 포르투갈 사이의 무역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중고고학은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기도 한다. 가령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서쪽 해역에서 발견된 당시 함대에 대한 발굴 결과를 보건대, 조악한 배에 오합지졸 선원들이 탔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소설 ‘보물섬’에 나오는 캡틴 키드의 보물선 ‘퀘다머천트’호도, 악명 높은 해적 블랙 비어드가 좌초시키고 보물만 훔쳐갔다는 전설의 ‘앤 여왕의 복수’호도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발견됐다는 대목에선 입이 떡 벌어질 따름이다.
저자는 동양의 해저 보물선을 통해 당시 한·중·일 3국 관계도 살펴본다. 1975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 보물선’. ‘원나라와 일본의 무역 타임캡슐’로 불리는 200t급 배에는 동으로 만들어진 중국 화폐 700만개가 실려 있었다. 학자들은 당시 동전 재료인 동이 귀했던 일본인들이 중국의 왕조가 바뀌며 쓸모없어진 동전을 가져가려 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연구가 가능한 건 수중 유물의 보존 상태가 의외로 양호해서다. 산소가 차단된 바다 속은 거의 모든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했다. 게다가 배는 항해에 필요한 필수품만 챙겨 넣는 공간이라 육지 유물보다 훨씬 집약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저자는 해저 보물선의 발굴 과정까지 상세히 소개한 뒤 인류의 귀한 자산인 수중 유물에 대한 보호와 연구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또 하나. 우리나라 수중고고학 분야가 세계적으로 훌륭한 수준이라는 걸 아는지? 저자는 “한국의 수중고고학은 아시아 전역에서 본보기가 되며 발굴 보고서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이 분야가 낯설고 생소할까. 한국 정부와 연구진이 수중문화유산 보호와 연구에 주력한 데 비해 대중화에는 신경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홍성민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