罰보다 교화… 책벌 판결 82%가 피고인 권리 존중
입력 2014-02-26 18:06 수정 2014-02-27 02:34
예장통합 ‘총회재판국’ 판결문을 통해 본 재판 성향
2011년 초, 경북 김천의 H교회 당회는 일부 교인들이 교회 음향시설 공사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징계절차에 들어갔다. 징계를 받게 된 S집사 등이 사실과 다르다며 항의하자 교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교회 재판국을 열어 ‘출교’ 처분을 내렸다. 출교를 당한 피고인들은 소속 노회 재판국에 항소했지만 기각되자, 소속교단인 예장통합 총회재판국에 상고했다. 총회재판국은 “출교의 책벌은 심히 부당한 양형”이라며 견책으로 낮췄다. ‘출교’에서 ‘견책’으로 형량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교회 재판의 대법원격인 교단 총회재판국은 근신·정직·면직 등의 책벌 소송에 있어서 피고인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분석됐다.
교회법학회(회장 서헌제 교수)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이뤄진 총 90건의 예장통합 총회재판국 판결문을 분석, 이같은 내용의 분석자료를 26일 내놨다. 교단 재판국 판결문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료는 내달 중순 발간되는 교회법학회 학술지 ‘교회와 법’ 창간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자료에 따르면 총 90건의 판결문 가운데 실제 소송에 대한 ‘판결’이 50건(55.6%), 소송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는 ‘결정’이 40건(44.4%)을 차지했다(표). 특히 견책·근신·출교 등 벌을 다루는 23건 책벌 판결 가운데 총회재판국에서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거나(파기환송), 원심을 파기하고 재판국이 스스로 재판하는(파기자판) 경우가 19건으로 82.6%에 달했다. 기각은 4건에 불과했다.
즉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요청한 상고를 총회재판국이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총회재판국이 죄과를 감해주거나 면제해주는 온정적 경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같은 판결에 대해 서 교수는 “교회재판이 사회법과 달리 벌을 주는 행위 자체보다는 죄인을 회개·교화시키기 위한 교회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려는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결정’ 형식의 재판 중에는 당사자의 고소고발에 대해 노회 기소위원회가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경우, 총회재판국도 이를 수용하는 판단이 많았다. 불기소 처분에 대해 사건 당사자가 재판해 달라는 항고 또는 재항고에 대해 기소명령을 내린 건 9건(34.6%)에 불과했다. 되도록이면 법적 다툼을 지양하고자 하는 총회재판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선거 관련 소송에서는 선거 또는 당선 무효를 인정한 경우가 7건 중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기각됐다. 서 교수는 “선거 결과가 박빙이거나 명백한 불법행위가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아니면 무효 판결은 가급적 자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현재 한국의 모든 교단들이 교회재판 공개원칙을 헌법상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 교회재판은 물론 판결문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결을 통해 확립된 재판부의 입장을 바로 알아야 교회재판에 대한 교리·법리적 분석과 비평이 가능해져 교회법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요 교단 가운데 사건번호부터 소송 종류, 판결(결정)선고일, 주문, 판결(결정) 이유 등을 적시한 완벽한 형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교단은 예장통합이 유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