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섭의 시시콜콜 여행 뒷談] 세 번만에 허락한 산
입력 2014-02-27 01:33
사실, 오도산 정상의 일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보름 전에 합천을 찾았습니다. 해뜨는 시각에 맞추기 위해 수원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새벽 2시. 도착했더니 오도산은 6시 반 경인데도 어둠뿐이었습니다. 찻길이 구불구불하기는 해도 정상까지 이어진 덕분에 그나마 캄캄한 산 속에 홀로 있는 무섬증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에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차 안에서 해 뜨기를 기다리다 깜빡 졸았는데 눈을 떠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더군요. 10분 사이 폭설이 내린 게지요.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구름에 둘러싸여 카메라 셔터는 눌러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스노체인을 두고 온 자신을 질책하면서 그 가파른 눈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왔습니다.
오기가 발동해 이튿날 새벽 다시 오도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안개가 산 정상을 뒤덮었습니다. 안개가 걷힐 때까지 서너 시간을 하릴없이 기다렸습니다. 안개가 걷혔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솟은 후. 그 밋밋한 사진으로 독자를 뵐 면목이 없어 이번에 다시 오도산을 찾은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세 번째 도전에 오도산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운무에 둘러싸인 산줄기들이 중중첩첩 수묵화를 그리며 이어지는 풍경은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안개를 뚫고 섬처럼 솟은 산봉우리들이 시시각각 주홍색으로 물들어 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 이리저리 미친 듯이 뛰어다녔습니다.
이번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바람에 ‘애마’에 보관하고 있던 털장갑을 비롯한 방한용품을 너무 일찍 치워버린 것이지요. 영하 몇 도인지는 몰라도 맨손으로 삼각대를 잡자 쩍쩍 들러붙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다 뺐다 반복해 봤지만 맨손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어붙어 초점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1998년 4월 1일 천리행군 중이던 특전사 대원 6명이 충북 영동의 민주지산에서 동사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땐 봄날에 웬 동사냐고 의아했습니다.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봄기운에 취해 가벼운 차림으로 산을 오르는 우(愚)를 범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