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본 인기 비결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감독 크리스 벅·제니퍼 리)이 개봉한 건 지난달 16일이었다. 작품은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 그리고 가족 관객층에 얼마간 어필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작품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지금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거란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겨울왕국’ 누적 관객 수는 전날 기준 972만명에 달한다. 이번 주말엔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이란 게 영화계 안팎의 전망이다. 이럴 경우 ‘겨울왕국’은 처음으로 ‘1000만 영화’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애니메이션이 된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갖는 특성상 ‘겨울왕국’이 창출한 부가가치 역시 엄청나다. 극중 캐릭터를 활용한 문구나 완구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뮤지컬 형식이 가미된 작품인 만큼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역시 큰 인기다. OST 타이틀곡 ‘렛 잇 고(Let It Go)’는 각종 차트 정상을 석권했다.
무엇이 이 같은 ‘겨울왕국’ 열풍을 가능케 했을까. 영화평론가와 뮤지컬평론가, 영화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 관계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상대로 ‘겨울왕국 열풍’의 특징과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가족 관객을 움직인 작품”
“올겨울 극장가에선 ‘겨울왕국’과 한국영화 ‘수상한 그녀’가 크게 흥행했다. 그런데 매주 박스오피스를 보면 평일엔 ‘수상한 그녀’가, 주말엔 ‘겨울왕국’이 1위를 차지했다. 이건 그만큼 ‘겨울왕국’에 가족 단위 관객이 대거 몰렸다는 걸 의미한다. 주말엔 가족들이 함께 극장을 찾는 경우가 많으니까.
여성 관객이 좋아한 작품이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여성 캐릭터는 남성에게 종속돼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겨울왕국’은 달랐다. 여성이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었고 이 점이 여성 관객에게 어필했다. 음악 마케팅 역시 훌륭했다. ‘렛 잇 고’의 인기가 작품의 흥행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 “‘가족 관객’→여성→재관람자가 차례로 흥행 주도”
“예매 특징을 분석해보면 관객 수가 300만∼400만명 수준일 때까진 ‘가족 관객’ 비율이 유독 높았다. 이후 600만명을 넘기는 시점까진 여성 관객이 흥행을 주도했다. 그 뒤엔 관객의 성별이나 연령이 고른 현상을 보였다. 600만명을 넘어서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인증’을 받은 셈이다. 800만명을 돌파한 뒤엔 재관람률이 높아졌다. 요즘엔 봄 방학이 시작되면서 가족 관객이 ‘겨울왕국’을 보러 다시 극장을 찾는 분위기다. 매년 2월은 극장가 비수기로 통한다. 이런 비수기엔 ‘가족 영화’가 흥행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겨울왕국’도 이런 공식에 부합한 작품이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 “‘겨울왕국’은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던 양질의 뮤지컬”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2000년대 들어 매년 17%를 웃도는 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뮤지컬을 떠올릴 때 대중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뭔가. 바로 티켓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그런데 ‘겨울왕국’은 저렴한 가격에 영화와 뮤지컬의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전통적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서 당대 가장 잘 나가는 작곡가나 배우를 활용해왔다. ‘겨울왕국’ 역시 마찬가지다. ‘렛 잇 고’를 부른 이디나 멘젤(43)은 인기 뮤지컬 ‘위키드’ 초연에서 ‘초록마녀’ 엘파바 역을 맡은 배우다. ‘겨울왕국’ 관객들은 이런 사람이 참여한 뮤지컬을 싼 가격에 즐길 수 있었다. ‘겨울왕국’은 한 편의 창작 뮤지컬이 얼마나 큰 파워를 가지는지 보여줬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겨울왕국’은 하나의 문화현상”
“성인과 아동을 모두 만족시킨 콘텐츠였다. 하지만 콘텐츠 수준이 뛰어나다고 모두 잘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겨울왕국’이 크게 흥행한 건 이 작품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소비됐기 때문이다. 가령 유튜브엔 각종 패러디 영상이 넘쳐났다. ‘겨울왕국’의 ‘서브 컬처(하위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달라진 영화 관람 행태도 한몫했다.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관람이 일반화되면서 요즘 관객은 보고 싶은 영화를 미리 정한 뒤 극장을 찾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영화관에 일단 간 뒤 볼 영화를 고르는 패턴을 보인다. 그렇다보니 요즘엔 ‘가족 영화’가 흥행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왕국’이 북미 시장 다음으로 한국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한 건 한국인의 관람 행태에 맞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겨울왕국’ 흥행 돌풍… 첫 ‘1000만 관객 애니메이션’ 탄생 임박
입력 2014-02-27 01:32 수정 2014-02-27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