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72)] 여행은 돌아갈 집이 있어 행복하다
입력 2014-02-26 17:22
얼마 전 다녀온 일본 여행길은 무척 힘들었다. 도쿄에 40년 만에 폭설이 내렸기 때문이다. ‘갈렙 밝은 문화 은목회’ 고문 목사님들 열두 분을 모시고, 각 교단의 단합과 화합을 위한 원로들의 고견을 들을 겸 온천도 즐길 겸 여행길에 올랐다. 각 교단의 원로 총회장님들이라 경륜과 덕망이 있는 분들이다. 서로 항상 존중하며 대화도 늘 즐거운 모임이라 한 분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했다.
그러나 폭설로 인해 목적지인 호텔은 가보지도 못했고, 고속도로는 통행이 강제로 차단되어 버렸다. 추운 겨울에 모든 차량이 길거리에 멈춰선 채 밤을 새우게 됐다. 스무 시간 정도 차에 갇혀 있자니 잠도 편히 자지 못했고 음식도 부족했다. 심지어 생리 현상도 쉽게 해결하지 못해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속도로에 갇힌 일본인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소동이 없었다. 조용히 정부의 지시에 순종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과연 질서의 나라 일본이다. 만약 이 일이 한국에서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눈을 치우는 공무원이 도착했다. 일을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눈은 치우지 않고 1회용 소변 용기만 나눠주고 다닌다. 매뉴얼에 따른 준비가 다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몇몇 장비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3시간 정도면 끝날 일을 20시간이 넘도록 안 하고 있는데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이처럼 매뉴얼에 따라 사는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정말 큰일이 났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가 움직일 기름도 없는데 히터를 켜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추위와 공포 속에서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기적처럼 눈이 그치고 새벽에 길이 조금 열려서 점심을 먹고 근처의 호텔로 갈 수 있었다.
한 목사님의 말씀이 명언이었다. “목사는 성령이 없으면 안 되고 버스는 기름이 없으면 안 된다.” 모두들 동감했다. ‘기름을 미리 준비합시다’가 그날의 명언이었다.
20시간 버스 속 대화의 주제는 단연 교회연합운동이었다. 한 합동측 목사님이 “우선 저희 교단의 가스총 사건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 생각에는 모든 연합운동을 모두 해체하고 하나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모두 시큰둥하다.
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다른 한 분이 한기총 성토를 시작하신다. 한기총 지도부가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이 문제에는 모두 공감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또 한 분은 “현재 하나로 모이기는 힘들지만,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만이라도 하나가 되어 보자”며, “기름 유출 사건 때 기독교가 하나 되어 정말 큰 성과를 내었지 않았느냐”고 예를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분이 많았다.
그 다음 주제는 WCC에 관한 것이었다. 이 주제에는 격론이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언쟁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였다. 옹호하는 목사님이 “저번 회의 때 격렬한 반대 시위는 너무 심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니, 반대 교단 측 목사님이 “일부 긍정은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WCC에 있다”며 극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한 목사님이 “WCC가 한국전쟁 때 구호물자를 얼마나 많이 주었는지 아느냐”며, “많은 목사님들을 해외로 유학 보냈고, 특히 독재 정권과 투쟁할 때 큰돈을 주어 민주화에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도시산업선교회, YMCA 등 민주화 투사에 대한 전적인 지원을 잊지 말자”고 항변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분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그때 유학 간 목사님들이 종교다원주의를 교육받아 한국에 에큐메니컬(ecumenical) 운동을 가져왔고, 이는 교회 분열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는 항변이었다. “‘병 주고 약 주고’가 WCC의 문제”라며, “사회 운동과 민주화에 대한 공은 인정하나, 자유신학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과 분열에는 WCC의 책임도 있다”고 항변했다. 논쟁이 너무 격렬해지자 한 목사님이 나서서 이제 그만하자며 끝냈다.
그날 밤 호텔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온천도 즐겼고 음식도 맛있었다. 하룻밤의 짧지만 달콤한 휴식이 있어 모두들 행복해졌다. 격렬한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상한 분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즐거워했으며, 오히려 폭설로 인해 마련된 토론장이 무척 기뻤다고 했다. 이번 여행을 주관했던 나 자신도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영성을 가진 분들과의 여행을 통해 한국 교회의 힘을 보았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성령님과의 동행을 기뻐하는 보수적 신앙을 가진 목사님들, ‘신학’은 자유신학과 복음신학으로 나뉠 지라도 ‘신앙’은 모두 보수/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원로 목사님들에게 머리 숙여 배웠고 행복했다.
이 세상 광야에서 여행하는 우리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준비된 하늘나라의 축복을 생각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마쳤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