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주인공 품절녀들이 접수… ‘미시배우 전성시대’
입력 2014-02-27 01:32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여배우에게 결혼은 ‘금기(禁忌)’였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은 여배우의 재기를 어렵게 했다. 기혼 여배우는 가장 ‘핫’한 배우가 출연한다는 미니시리즈보다 주말극이나 일일극으로 필드를 옮겨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다. 톱 여배우 시절 결혼한 뒤 은퇴를 선언한 심은하(42)나 10년의 공백기 후 돌아온 고현정(43). 여배우에게 결혼은 잠정적 ‘은퇴선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결혼한 여배우들이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다. 안방극장은 지금, 미시배우 전성시대다. 오히려 20대 여배우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무르익은 연기와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이들은 미혼과 기혼, 20∼30대 여성 역할을 넘나들며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월화·수목·주말까지 ‘품절녀’들이 접수했다=“나이가 주는 사회적 인식이라는 게 있죠. 성숙해지고 결혼하고 이런 변화로 인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SBS 수목극 ‘별에서 온 그대’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배우 전지현(33)은 이같이 말했다. 2012년 4월 결혼한 그는 영화 ‘도둑들’(2012), ‘베를린’(2013)으로 결혼 전보다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이후 SBS 수목극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12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그는 ‘천송이 신드롬’을 만들어가며 20대 대학생이자 톱스타 천송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각종 CF를 섭렵하면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해 8월 배우 이병헌(44)과 결혼한 이민정(33)은 27일 첫 방송되는 MBC 수목극 ‘앙큼한 돌싱녀’에서 이혼녀 나애리 역할을 맡았다. 결혼 후 첫 작품을 이혼녀 역으로 결정한 그는 “결혼하지 않았을 땐 모르는 게 있었을 텐데 이번엔 부족하지만 경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3일 첫 방송되는 SBS 월화극 ‘신의 선물-14일’에는 지난해 9월 배우 지성(본명 곽태근·37)과 결혼한 이보영(35)이 9살짜리 딸을 잃어버린 엄마를 연기한다. 전작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출연했던 한혜진(33)의 경우, 결혼 후 첫 작품으로 불륜녀 캐릭터를 선택해 복잡한 감정 연기를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KBS 월화극 ‘태양은 가득히’에 출연 중인 한지혜(30)는 25세 미혼여성 한영원 역을, KBS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선 김희선(37)이 억척스런 대부업체 직원 차해원으로 분했다.
◇품절녀들이 안방극장을 차지하게 되는 이유는?=전문가들은 드라마 소재가 젊은 남녀의 로맨스에서 재혼, 이혼, 불륜 등의 소재로 넓어져 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미혼인 배우가 아기 엄마, 이혼녀 등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결혼을 한 여배우의 경우 그만큼 경험이 쌓여있고 감정 표현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강현 KBS 드라마 PD는 “최근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데 20대 초중반의 배우들이 이를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다양한 연기 패턴을 실현할 수 있고 검증된 30대 초반 미시배우들로 스펙트럼이 넓어져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주진 드라마평론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문화를 수용하는 주도층도 과거 10∼20대에서 20∼40대까지 두터워지고 있다”면서 “이런 배경에서 연상연하 관계, 결혼, 이혼 등 다양한 소재가 극 중 사용되다 보니 과거 20대 초반 젊은 여성들이 주로 맡던 여주인공의 역할이 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