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경제팀을 무두질하라

입력 2014-02-27 01:33


혁신(革新)의 국어사전 풀이를 보면 묵은 풍속,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함이라고 적혀 있다. 革의 본래 뜻은 짐승의 가죽(皮)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부드럽게 다듬어 만든 새 가죽이다. 주역(周易)에 “革은 옛 것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즉 혁신은 기존의 것을 새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경제를 과거의 성장 프레임에서 탈피(脫皮)시키려는 의도에서 혁신이란 표현을 3개년 계획에 넣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년대부터 추진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조국의 근대화를 앞당기기 위한 압축성장을 이뤄냈다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딸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제도와 기구를 새롭게 만드는 개혁(改革)보다 잘못된 관습까지 바꾸는 혁신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비정상화의 정상화’와 궤를 같이한다고 강조한다.

매끄럽지 않았던 대통령 담화

그러나 3개년 계획을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날 오전 10시부터 41분 동안 TV로 생중계된 대통령의 담화는 매끄럽지 못했다. 얼굴을 찡그려 가며 프롬프터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숨차 보이기까지 했다. 핵심 단어인 ‘혁신’을 ‘확산’으로 잘못 발음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한 것들을 종합해 보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증이 다소 해소됐다.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직전 조원동 경제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만들 거라고 발표한 건데 왜 수석실에선 신년기자회견 예상질문밖에 보고하지 않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조 수석은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고 과정에서 지나가는 말로 혁신경제 계획을 만들어 보겠다고 가볍게 얘기한 적이 있을 뿐인데 대통령이 이걸 기억하고 독려해 화들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로부터 한 달 반 뒤인 지난주 목요일 기재부가 경제수석실에 올린 최종 보고서는 혁신과는 한참 거리가 먼 수준이었다고 한다. 창조경제를 키워드로 한 3개년 계획이 지난해 나온 각 부처의 정책들을 나열하고 짜깁기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등과도 하는 둥 마는 둥 정책협의에 그쳤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기재부는 출입기자를 상대로 한 사전 브리핑에서 지난 1년 동안 발표한 내용들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얼렁뚱땅 둘러댔다.

결국 짜깁기 내용을 대통령이 다 쳐내고 핵심 내용을 담아내는 담화문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미리 배포키로 했던 300쪽 분량의 전체본은 없던 일이 됐고, 100대 과제는 25개로 쪼그라들었다. 담화문에 갑자기 등장한 비정규직 해고요건 강화 한마디에 고용노동부 등 경제부처는 무슨 말인지 몰라 허둥대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관료들 맹성해야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행정고시 재경분야에 합격한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이 몰려드는 기획재정부가 아직도 자만에 빠져 70년대 개발경제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의아스럽다. 국민들이 진정 가려워하는 부분이 뭔지만 고민했어도, 대통령과 코드만 제대로 맞추고 있어도 이렇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각설이 끊이지 않는 요즘, 모피아로 통칭되는 이들은 어느 기관장으로 갈지 눈치나 보며 여의도와 청와대에 주파수를 맞추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얘기가 넘쳐난다. 경제혁신보다 급한 것은 기존 정책이나 짜깁기하고 잿밥에나 신경 쓰는 경제팀을 무두질해 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