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가 다할 거면 내각은 왜 필요한가

입력 2014-02-27 01:51

유기적 역할분담 이뤄져야 원활한 국정운영 기대할 수 있어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대통령이다. 그러나 날로 다원화, 다기능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대통령 혼자 모든 국정을 하나하나 챙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그 실천방안 마련은 전문가 집단인 내각에 맡기는 게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대통령과 내각 간에 유기적인 역할분담이 이뤄질 때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런 점에서 25일의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담화는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형식적 측면에선 ‘대통령 원맨쇼’라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다. 박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이를 추진해야 할 주무 부처에서도 모르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담화 후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간부들이 당황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재부는 담화 발표에 앞서 300쪽 분량의 초안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은 이 초안이 크게 미흡하다고 판단, 새 버전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대통령 담화 발표 후에 있을 예정이던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공식 브리핑이 취소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게다가 노동부 방침과 달리 비정규직 해고 요건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담화에 들어갔다. 청와대의 일방통행으로 청와대와 경제부처 사이에 사전 조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불통과 졸속의 합작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통일 의지는 역대 어느 대통령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통일대박론에 이어 대통령 직속의 통일준비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평화적 통일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의무이다.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 통일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일은 이를수록 좋다. 또한 적극 장려할 일이지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통일준비위원회 신설에 대해서는 선뜻 수긍이 안 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유사한 헌법기관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평통은 평화통일에 필요한 정책 수립에 관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지부까지 있는 거대 조직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의장이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훌륭한 통일 싱크탱크가 될 수 있다. 세금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존 조직을 내버려둔 채 성격이 비슷한 조직을 신설하는 건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 격이다. 민주평통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게 먼저다.

그럼에도 통일준비위를 신설한다면 민주평통은 물론 통일부와의 기능과 역할 중첩은 피할 수 없다. 통일준비위가 주(主)가 되고 통일부는 종(從)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십중팔구다. 젊은층 사이에 통일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주무 부처를 도외시한 채 통일, 외교, 안보,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청와대 홀로 챙기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