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8) 학비·잠자리 없어 神學 포기 순간 루터교회서…

입력 2014-02-26 01:59


공사 현장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이모 댁에서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종사촌이 곧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갈 곳이 없어 난감했다. “교회 사무실 바닥이라도 좋으니 잠만 재워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면서 교파를 가리지 않고 여러 교회를 찾아가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다시 충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때 신과대학을 함께 다닌 전대환이라는 친구가 솔깃한 말을 해줬다. “루터교회가 연세대 신과대학과 위탁교육협정을 맺고 있어서 루터교에 가면 등록금이나 기숙사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망설일 겨를도 없었다. 당시 루터신학원장이던 메이날드 도로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사정을 말씀드렸고 다음에 다시 찾아뵙고 정식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교파였다. 당시 감리교회에 다니던 필자는 부끄럽게도 루터교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생소하고 이상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루터교회로 가지 않고 장로교나 감리교, 순복음교회로 가려고 계속 숙소를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다 도로 목사님과 약속한 날짜를 넘겨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일 때문에 바쁘다며 약속 날짜를 좀 미루자고 말씀드렸으면 됐을 텐데 고지식하게도 그런 임기응변을 하지 못했다.

결국 숙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약속도 지키지 않는 신학생’이라는 꾸지람을 들을 각오를 하고 도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허락하신다면 찾아뵙겠습니다”고 말씀드렸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도로 목사님께서 감사하게도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루터신학원(Lutheran Theological Academy)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낮에는 연세대에서, 밤에는 루터신학원에서 공부했다. 연세대 등록금은 루터교에서 지급해줬다. 루터신학원에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 기숙사에서 지내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때 루터신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의 얼굴이 새삼 떠오른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루터교단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김철환 박일영 윤병상 한영복 목사 등이다. 김 목사는 현재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이다. 박 목사는 루터대 총장을 지냈으며 한 목사는 현재 부총회장이다. 윤 목사를 비롯한 다른 많은 친구들도 각자 진로를 따라서 학계 또는 목회 현장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

루터교단 덕분에 걱정 없는 신학생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대조동루터교회, 중앙루터교회에서 전도사로서 목회 실습을 하며 행복한 신학생 시절을 보냈다. 생활이 안정되자 공부에도 능률이 올랐다. 신과대학 4년 과정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어느 날 연세대 신과대학장이던 존경하는 박준서 박사께서 필자를 불렀다. 구약학을 전공해 신학자의 길을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주셨다. 외국으로 유학갈 수도 있고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터교회를 배신할 수 없었다. 또 학교보다는 목회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결심을 한 터라 정중히 거절했다. 박 교수님께는 지금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루터교회는 필자에게 신학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줬을 뿐 아니라 목사가 되게 해줬다. 설사 루터교회가 나를 쫓아내는 일이 있다고 해도 나는 내 어머니 같은 루터교단을 배신할 수 없다.

만약 루터교단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조동루터교회에서 전도사 실습을 할 때 아내를 만났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