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눈으로 보는 것을 믿는 세상

입력 2014-02-26 02:06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내가 어린 시절에 즐겨 불렀던 동요 ‘섬집 아기’의 노랫말이다. 나는 이 동요를 눈물 흘리며 부를 정도로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륙에서 자란 나는 바다를 구경해 본 일이 없었다. 섬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엄마가 따러 갔다는 굴은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다.다만 노래가 좋아 자주 부르며 감성에 젖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나의 상상력은 부족했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단순함이 있었다.

우리의 인간사가 이렇게 단순하고 투명하게 이뤄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떤 현상과 사물을 이해하고 신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믿음을 갖기가 어렵고, 인간관계는 신뢰가 없어 불안하고, 맹세나 약속, 결정 등은 이뤄지지 않을 위험성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안전장치를 만든다. 이른바 등기나 각서 등으로 약속과 결정한 것을 보장받으려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안전장치마저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과연 사람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눈으로 보지 않고, 증명하지 않고도 어떤 사실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주관적이며 비논리적이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스크린의 지배를 많이 받음으로 눈이 쉬지 못한다.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확인해야 믿을 만큼 스크린은 사실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스크린은 우리의 상상력과 낭만을 빼앗아 가는 주범이다.

프랑스 여성작가 니콜 아브릴(Nicole Avril)은 ‘얼굴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긴 우상과 어떤 형상도 만들지 못하도록 하셨다. 모세를 비롯해 사람이 살아있는 한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인류는 역사를 거듭하며 다양한 상징과 형상, 그리고 성화를 통하여 믿음을 표현하게 되었다”고 서술했다. 결국 인간에게 눈에 보이는 형상과 상징은 신이라는 믿음의 대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을 말한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의 태도를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한 것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 의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믿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인간관계와 일 속에서 나타내야 할 우리의 인격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믿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을 수 있는 말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간관계와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더 투명하고 단순해져야 하리라 생각된다.

<여주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