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빅토르 안,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입력 2014-02-25 02:34
안현수(빅토르 안·29·사진)는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름이다. 안현수가 지난 15일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기자 안현수에겐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고, 대한빙상경기연맹에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만일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가 소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면,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가 금빛 레이스를 펼치자 갑자기 우리 국민들은 허탈과 분노를 터트렸다. 영문도 모르고 타깃이 돼서 억울하게 욕을 먹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론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흘렀다. 안현수가 왜 러시아로 귀화했는지, 당시 상태는 어땠는지, 나머지 우리 선수들이 어떤 상처를 입을지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쇼트트랙 파벌싸움 탓이라고 하니 융단폭격을 가했다.
안현수는 3관왕에 오른 뒤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에 꼭 한번 다시 나가고 싶었기에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며 “(한국 빙상계에) 파벌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을 등진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에 온 것은 마음 편히 운동하고 싶어서였다”고 귀화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안현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조국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그의 ‘재기 드라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으로 1년간 4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2010 밴쿠버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 나갔지만 탈락했다. 안현수는 “당시 한 달밖에 운동을 하지 못했다”며 “어떤 특혜를 바라지도 않았고, 대표팀 탈락에 대해선 서운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2010년 말 성남시청이 해체된 후 에이전트인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러시아행을 타진했다. 러시아측에서 먼저 손을 내민 것도 아니다.
당시 안현수는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 빙상연맹회장에게 무릎부상 상태를 찍은 사진을 보냈는데, 러시아 의료진은 “이런 선수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며 크라프초프 회장에게 면박을 줬다. 하지만 크라프초프 회장은 “재활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고, 안현수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금메달로 증명했다.
“나의 망가진 무릎을 보고 러시아연맹에서는 믿음을 보내 줬지만, 한국에서는 (믿음이) 전혀 없었다”는 안현수의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이 안현수에게 믿음을 줬더라도 선수층이 두텁고 세대교체가 활발한 한국빙상의 현실에서 그가 재기한다는 보장은 없었는지 모른다.
또 안현수가 러시아에 금메달을 3개나 안겨줬다고 해서 우리가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어보인다. 오히려 러시아 영웅으로 떠오르면 현지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더 좋아질 수 있다. 안현수는 양국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를 매개로 두 나라가 서로 우의를 다지고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또 하나의 한류도 된다. 빅토르 안이 더 이상 우리에게 불편한 존재가 돼선 안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