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년-복지] 기초연금도 4대 중증질환 보장도 협의없는 일방적 ‘후퇴’
입력 2014-02-25 01:39
‘박근혜호’가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야심 차게 출범한 지 1년. 기초연금 도입과 의료비 경감, 빈곤층을 위한 맞춤부조 같은 박근혜정부의 핵심 공약 상당수는 사회적 논란을 조율하지 못한 채 국회 벽에 부딪쳐 표류 중이다. 대선 공약에서 몇 발 후퇴한 추진계획이 반발을 자초한 데다 청와대가 전권을 쥔 채 여당과 정부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재량권을 허락하지 않은 탓도 컸다. 내줄 게 없는 협상은 몇 달째 공전 중이다. 올 하반기를 시행시기로 잡고 예산까지 받아놓은 주요 공약사업들의 향후 6개월 추진일정에 따라 박근혜정부 5년의 평가는 달라질 전망이다.
◇국회 벽 앞에 ‘일단 정지’=대표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기초연금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 대신 별도의 협의체에서 논의가 진행돼 오다 그마저 중단됐다. 기초연금 협상을 위해 국회 내에 구성된 여·야·정협의체는 지난 23일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결국 최종 결렬됐다. 기초연금과 관련한 협상 정권은 여야 지도부에 넘어간 상태다.
한달 협상 내내 양측 핵심주장은 ‘국민연금 연계’(여당·정부) ‘연계 반대’(야당) 사이에서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진전이라면 새누리당 측이 내놓은 양보안이다. 정부안인 ‘노인 70% 대상 국민연금 연계 월 10만∼20만원 지급’ 중 ‘대상자 70%’를 ‘75%’로 확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당장 20만원 받을 수혜자도 늘어나는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 대놓고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섣부른 타협도 쉽지는 않다. 연계안에 대한 외부 반대는 여전히 격렬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은 협의체가 결렬된 뒤 24일 성명을 내고 “공적연금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국민연금 연계안은 절대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긴 하지만 빈곤층 정책의 근본을 바꿀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국회 벽에 막혀 오는 10월 시행이 불투명해졌다. 지난주 국회 상임위 법안 소위에서 마지막 회의까지 최종안이 합의되지 않아 일단 4월 국회로 미뤄졌다.
기초생활보장제는 최저생계비 미만의 저소득층을 돕는 일종의 빈곤구제 제도이다. 앞으로는 생계·주거·의료·교육 등 항목별로 대상자를 각각 선정해 현금 혹은 현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완전히 바꿀 계획이다. 선정 기준도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전체 가구의 소득순위 중 정중앙)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사용된다.
야당 및 시민단체에서는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법이 명시가 되지 않아서 장기적으로 수혜자가 축소될 우려가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어렵게 첫발 뗀 4대 중증질환 보장=법률 개정 사항이 아닌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계획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진행 중이다.
이미 2013년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일부 영상검사, 2015년에는 방사선 치료 및 심장·뇌수술 재료, 2016년에는 유전자 검사 등이 차례로 필수의료로 분류돼 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수백만원대의 고가 항암제는 올해부터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보험이 적용된다.
불만이 쏟아지는 건 최근 발표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의 해법이다. 4대 중증질환의 경우 이미 건강보험 보장률이 90%를 넘긴 상황이어서 그간 환자 부담의 대부분은 3대 비급여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작 핵심인 비급여 해법이 제조 존치 쪽으로 결론 나면서 “병원계와 타협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편에서는 “미흡하긴 하지만 임기 내에 선택진료와 상급병실료를 건강보험에 포함시키기로 했다는 점에 대해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나머지 국정과제 성적표는=장애인 정책과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추진성과가 많지 않다. 지난해 제정을 약속했던 발달장애인법은 국회에 계류된 채 통과 전망이 밝지 않다. 장애인들의 숙원이었던 장애인등급제 폐지도 임기 내 실현될 수 있을지를 놓고 회의적 목소리가 커져간다.
지난해 발표 당시 2017년 완전 폐지의 전 단계로 상정했던 ‘경·중증 단순화’ 계획이 장애인단체들의 반대로 폐기된 뒤 세부적인 추진 일정이 발표되지 않았다. 장애인연금 확대 계획은 기초연금에 발목이 잡혀 있다. 두 제도가 연동돼 있어 기초연금법이 표류하면서 장애인연금법 역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올 7월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술·담배에 대한 규제 강화’라는 선언적 문구만 포함됐던 건강 분야에서도 진전은 많지 않았다. 담뱃세 인상은 운만 띄워놓았다. 기획재정부 반대에 밀린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등 역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 막혀 기약이 없다. 알코올·마약·도박·인터넷 4대 중독문제를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4대 중독법도 게임업계의 격렬한 반대에 막혀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