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평가 가능한 직종에 여성 인재 편중되는 건 보이지 않는 성차별 때문”
입력 2014-02-25 01:39
유리천장 깬 ‘여성 1호’ 12명의 제언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의 ‘여풍(女風)’은 더 이상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나 공군사관학교의 수석을 여생도가 차지하는 일이 많아지자 최근에는 이를 막으려는 시도까지 나왔다. 여성 인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는 등 여성의 사회진출은 활발해졌지만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여전히 단단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사회 각 분야마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고위직에 오른 12명의 리더와 조윤선 장관이 만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필요한 정책 과제를 논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 등이 참석했다.
여성 최초로 대법관을 지낸 김 석좌교수는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성차별적인 사회 분위기가 깔려 있음을 지적했다. 김 석좌교수는 “각종 고시 등 성적으로 정확하게 평가되고 인정받는 분야에 여성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여성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성적순으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분야에만 여성이 몰리지 않도록 사회·문화적인 조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여성 인재의 진출 분야가 다양해지려면 성차별 없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성 리더들은 여성에게 권한이 있는 지위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조 차장검사는 “역량 있는 중간관리직이 많이 양성돼야 한다”며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여성인력이 많아지면 문화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과거 남성 지배적인 조직에서 여성으로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과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졌다. 한국은행 최초의 여성임원인 서영경 부총재보는 “과거에는 남성이 절대다수인 환경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여직원이 40% 정도이기 때문에 중요한 업무에 여성을 배제하면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여성 리더들 또한 임신·출산·육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현행 육아휴직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박경순 국민건강보험공단 징수상임이사는 “기업이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정부도 ‘4급 이상 여성 관리자 임용확대계획’을 세우고, 고위공무원 임용후보자 3배수 범위 안에 여성 후보자를 포함시키는 등 여성의 고위직 진출 확대를 위한 여건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