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입 연 삼성, 내친김에 ‘불편한 진실’ 털었으면…
입력 2014-02-25 02:33
[친절한 쿡기자] 삼성전자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사진)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이 영화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를 다뤘습니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김선범 DS(반도체 등 부품) 담당 부장은 지난 23일 자사 공식 블로그 ‘삼성투모로우(samsungtomorrow.com)’ 첫 화면에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회사 차원의 입장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블로그 첫 화면에 홍보 담당 중간 간부가 공개한 만큼 이 영화에 대한 공식 반응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김 부장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딸과의 대화에서 비롯합니다. 김 부장은 “지난 주말 친구들과 영화를 본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빠 회사가 정말 그런 일을 했어?’라고 물어봤습니다. 주인공이 불쌍해 여러 번 눈물을 흘렸고, 사실을 숨기려 나쁜 일을 서슴지 않는 회사의 모습에 화가 났다고 합니다”라고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오해’라며 안타까워한 건 영화 속 ‘진성반도체’ 인사담당자의 모습입니다. 김 부장은 “고인과 유가족을 만났던 인사담당자를 알고 있습니다. 고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던 분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영화 속 인사담당자는 ‘절대악’입니다. 숨진 황씨의 집에 찾아가 1000만원을 주며 “산업재해 신청은 하지 말라”고 회유하고, 병원에서 “자기가 병에 걸려놓고 왜 회사를 탓해”라고 비웃습니다. 산재 승인을 위해 뛰어다니는 아버지를 미행하고, 남동생이 돈벌이가 급하다는 점을 이용해 진성반도체에 취직을 시킵니다.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아버지가 자신을 막고 서 있는 아들과 맞닥뜨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이 오해라면 영화라도 삼성전자는 억울할 겁니다. 김 부장은 “관객들이 회사에 대해 느낄 불신과 공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인 반도체노동자의인권과건강지킴이(반올림) 임자운 활동가(변호사)는 24일 “영화에선 오히려 절제됐다”며 김 부장의 글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에 ‘우린 관련 자료들을 가지고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 영화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삼성전자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사안에 대해 직원의 글로나마 입장을 밝혔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 입장을 밝힌 김에 근로자 측의 요구에도 응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도 내놓고 앞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면 김 부장이 “안타깝다”고 한 불신도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은 잘못된 부분을 말해달라는데 인터넷으로만 오해라고 밝히고 다시 입을 닫아버리면 논란만 더 생길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 글에는 비난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삼성전자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