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 된 ‘한옥 주민센터’… 서울 혜화동주민센터의 봄맞이
입력 2014-02-25 01:37
“개 나와라. 개!”
서울 혜화동 주민 손화준(60)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윷가락 네 개를 모아 쥐었다. 윷판에 놓인 손씨의 흰 바둑돌은 결승점까지 단 두 칸만을 남겨 놨다. 그의 손을 떠난 윷가락이 볏짚 돗자리에 떨어졌다. “걸이다!” 손씨는 돗자리에 올라가 어깨와 허리를 흔들며 춤을 췄다. 한껏 흥이 오른 듯 그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정월대보름이던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혜화로 12번지 혜화동주민센터에서 ‘대보름 맞이 윷놀이대회’가 열렸다. 오전 11시 사물놀이 공연에 이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과 함께 시작된 행사에는 동네 주민 300여명이 참가했다. 주민센터 뒤편에선 육개장·수육·부침개·떡 등 잔치음식을 차려놓고 노인들을 대접했다. 모처럼의 동네잔치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막을 내렸다.
폭설이 잦아들고 날이 풀리면서 국내 유일의 한옥 청사인 혜화동주민센터에는 마실 오는 주민이 부쩍 늘었다. 도시락 싸들고 정원을 찾는가 하면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나들이를 온다. 옛 정취를 담으려는 사진 애호가들도 종종 이곳을 찾는다. 대학로를 거닐던 외국인 관광객이 이국적인 분위기에 끌려 사주문(四柱門·기둥이 4개 달린 문)을 넘었다가 관공서임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주민 이금숙(49·여)씨는 24일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아 옛날 생각에 자주 온다”며 “전국에 하나뿐인 한옥 주민센터여서 동네 주민으로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혜화동 주민센터는 2006년 가정집을 매입한 뒤 일제 잔재를 걷어내고 철저히 전통 방식으로 개조해 2012년 8월 문을 열었다. 한옥 청사 한쪽에는 주민을 위한 사랑방도 만들었다. 조각보 공예, 다도 강좌, 어린이 예절 교실 등의 프로그램이 열린다. 행사가 없을 때는 노인들을 위한 쉼터로 쓰인다. 장기판과 바둑판, 다과도 준비돼 있다. 이사동(76)씨는 “전통 한옥으로 지어서 옛 생각이 많이 난다”며 “이곳 사랑방에 오면 동네 친구들도 모두 나와 있어 마치 고향집을 찾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주민센터는 흙벽과 한지 창호로 사방을 두른 ‘ㄷ’자 형태의 기와집이다. 마당에는 잔디나 콘크리트가 아닌 마사토(화강암이 풍화된 흙)를 깔았다. 마당 한편에 꾸민 정원에는 은행나무를 심고 장독대와 석상을 놨다. 청사 입구에는 단청채색 없이 수수한 기와지붕 사주문을 세웠다. 민원실 입구의 자동 유리문과 천장의 냉·난방 장치만 현대의 산물이다.
임순만 혜화동장은 “한옥이라 옛날 생각이 나시는지 종종 어르신들도 사랑방을 찾는다”며 “청사 분위기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다른 여러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