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삶’ 음악으로 극복… 홀로코스트 최고령 110세 할머니 하늘로 떠나다

입력 2014-02-25 01:37

나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최고령 생존자로 알려진 유대인 피아니스트 알리체 헤르츠-좀머가 23일(현지시간) 11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1903년 11월 26일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헤르츠-좀머는 남편 레오폴드 좀머, 아들 슈테판과 함께 1943년 테레진시에 설치된 나치 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테레진 수용소로 보내진 14만명의 유대인 중 3만3430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8만8000여명도 아우슈비츠나 다른 수용소로 보내진 뒤 대부분 희생됐다. 남편도 독일 뮌헨 부근의 다하우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발진티푸스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1942년 폴란드의 트레블링카 수용소로 이송된 뒤 연락이 끊겼다.

비참한 삶을 지탱해 준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5세 때 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헤르츠-좀머는 수용소에서 음악에 몰두해 쇼팽의 연습곡 24곡을 하루 8시간씩 연습했다고 한다. 테레진 수용소의 경우 다행히 유대인 수용자들에게 음악을 허용해 수감된 유대인들을 위해 콘서트도 열 수 있었다.

1945년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면서 그와 아들은 2만명이 안되는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풀려날 수 있었다. 헤르츠-좀머는 이후 체코를 떠나 1986년까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다 런던으로 이주했다. 첼리스트로 활동한 아들은 2001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백년의 지혜’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더 레이디 인 넘버 6-음악이 내 삶을 구했다(The Lady in Number 6-Music saved my lif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는 3월 2일 시상식을 갖는 제86회 아카데미상의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로 올라 있다.

생전에 그는 수용소 시절에 대해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항상 웃을 수 있었다”면서 “늙고 외롭고 병든 사람들이 음악회에 왔으며 음악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 양식이었다”고 회고했다. 헤르츠-좀머는 생애 마지막 날들을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며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려줘야 할 선물”이라고 말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