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길성] 평창의 시간을 준비한다

입력 2014-02-25 01:40


“소치올림픽의 거칠고 과도한 자국주의를 평창올림픽에서는 말끔히 지워버려야”

“세계 2등, 3등도 엄청나게 잘한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2등, 3등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 나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네덜란드 선수는 동메달을 따고 너무 좋아한다. 우리나라 선수라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그게 참 부럽다. 그리고 또 슬펐다.” 소치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의 인터뷰이다. 무엇이 부러웠고 무엇이 슬펐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1등만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의 민심이 야속하다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1등만의 기억은 비단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가 ‘1등 몰입사회’라고 하여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효자 종목이니 메달 텃밭이니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스포츠만큼 1등으로의 질주를 강하게 요청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국가 주도의 엘리트주의와 과도한 성과주의의 쌍두마차에 의해 견인되었다. 국가가 주도하여 스포츠를 국력의 다른 표현으로 국위 선양의 일환으로 삼으며 오로지 결과만이 스포츠의 존립 양식으로 여겨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스포츠는 희망과 위로가 필요한 시절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잉 도전이 때로는 병리 현상으로 나타나고 그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체육계의 비정상적인 문제도 근원적으로는 과잉 도전이 만들어낸 후유증이 아닌가 한다. 스포츠의 영광을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사회는 요동을 쳤다. 가해자와 피해자, 연맹과 선수,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치달았다. 급기야는 파벌이 거론되고 체육계의 부조리와 난맥상으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이며, 기성세대의 문제라는 구조적인 진단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와 성공은 세계화 시대의 스포츠를 예견하게 만든다. 올림픽은 본디 국적에 근간을 둔 내셔널리즘의 상징 공간이다. IOC 헌장에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반드시 그 나라를 대표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올림픽은 국적이 분명한 경쟁의 장이다.

국가를 위해 달리는 국적 중심의 올림픽이 변화하고 있다. 국가의 경계가 무의미하고 국적의 구속력이 빠르게 약화되는 이동의 시대에 올림픽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화의 시대에는 본적지가 어디이며 성장지가 어디인가 하는 인구학적인 뿌리는 실행의 강제력이나 규범의 힘을 지니지 못한다.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도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경기 자체를 위해 선택한 것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빅토르 안을 “먼 훗날 올림픽에 프리랜서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기사화하였다. 변화를 읽어내는 논평이다.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를 수동적인 도피의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평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문화로 다듬어진 런던올림픽을 치르고 영국의 소프트파워 지수가 세계 1위로 등극하였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소프트파워란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며, 마음을 얻어내는 동력이다. 군사력, 경제력으로 행사하는 하드 파워와 달리 소프트 파워는 외교, 문화, 스포츠 등을 통해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량을 말한다. 평화와 배려를 향한 이 시대의 지구적 과제가 평창올림픽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소치올림픽의 대회 운영에서 거칠고 모나게 보였던 과도한 자국주의를 평창올림픽에서는 말끔히 지워버려야 한다. 그리고 재주 많고 열정 많은 우리의 쿨한 젊은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엮어주는 것은 사회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등 금메달 지상주의와 같은 좁은 생각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모두의 꿈이 펼쳐질 평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