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8) 브로치, 기특한 장신구
입력 2014-02-25 01:36
재킷을 입으면 가슴 언저리에 늘 얹히는 식의 브로치 패션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나머지 브로치와 스타일은 결탁할 수 없는 사이라고 믿어 왔다. 브로치를 쳐다보는 두 눈에 긍정의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장신구를 패션으로 승격시킨 모 패션 잡지의 화보 사진 한 장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사진 속의 브로치는 재킷의 깃을 지키는 수동적인 브로치가 아니었다. 티셔츠의 소매를 돌돌 말아 올려 어깨 부위에 고정시키는 몫을 별 모양의 보석 브로치가 다하고 있었다. 뜻밖의 실용성에 매료된 순간이었다. 그 후 브로치는 나의 의생활에 ‘패션’으로 안착하며 보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브로치를 멋있게 부르는 곳은 또 있다. 깊게 파인 목선이나 여밈을 옷핀 대신 브로치로 대신하면 분위기도 살고 품위도 얻는다. 티셔츠의 품이 클 경우 옆이나 뒤쪽에 브로치를 꽂으면 여분의 자락을 간수할 수 있다.
브로치의 진가는 기능성이 도드라질 때 빛난다. 고대 로마인들이 휘장처럼 늘어지는 기다란 겉옷인 토가의 주름 자락을 붙잡아 두기 위해 사용한 물건이 ‘피불라’라고 불리는 안전핀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브로치의 시조라고 할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어떤 브로치를 하는 것만큼 어디에 다는가도 중요하다. 여성미라는 명분 아래 피상적으로 ‘꽂히는’ 브로치는 천편일률적이다. 묶은 머리를 감싸는 리본 위 혹은 천 가방 모퉁이도 브로치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 장식성에 기능성이 가세하는 장신구가 브로치 말고 또 있을까?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