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구본우] 크로스컨트리를 보면서

입력 2014-02-25 01:36


소치를 밝힌 태극전사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런데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은 국민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설원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전통 종목 중 하나다. 금메달 12개가 걸려 있는 동계올림픽 주 종목으로 2명의 태극전사가 출전했다.

때로는 평지를 때로는 험난한 산악지를 오르내리고, 마치 흰 눈 위에 두 개의 선을 그리듯 눈 덮인 트랙을 달리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는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소진해 쓰러지는 선수들. 그 모습을 보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치 인체의 동맥과도 같은 생명줄 역할을 하는 송전선로 건설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한전인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전력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당면과제는 무엇보다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 있다. 입지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타당성을 높여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신뢰를 쌓으면서 상생과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충남 청원군에서는 지역주민과 한전 간 ‘신중부 변전소 및 송전선로 건설 상생협력 MOU’를 체결했다. 또 지난해 11월 경기도 포천에서는 10년 묵은 갈등을 해결하고 ‘신가평∼신포천 간 345㎸ 송전선로 가압식’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가압식을 통해 수도권 제2의 환상망이 연결됐고, 경기북부 지역의 대규모 정전 가능성을 해소하는 한편 지역경제 발전과 주민생활 증진에 한층 더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수차례 공사가 중단되기를 반복했던 이 두 사업이 사회적 갈등 해결에 대한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오랜 기간 갈등상황 속에서도 전력산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 내부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한 지역주민들의 대승적인 이해와 합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의 해결 과정에 있어 상생과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갈등을 조장하거나 증폭시키지 않고 평화로운 ‘공공의 합의’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공사를 재개한 밀양에서도 최근 보라마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25개 마을이 합의에 이르렀다. 이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밀양시 5개 면, 30개 마을 가운데 83%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직도 5개 마을 일부 반대 주민들은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전이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더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주민 한 분 한 분 설득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내 고장 밀양을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의 마음은 모두 한마음일 것이다. 더 이상 갈등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며 ‘희망버스’를 거부하는 마음도, 내가 사는 마을에는 절대 송전선로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하나다. 그러니 누구보다 밀양을 사랑하고 대대손손 밀양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주민과 한전 간 직접적인 대화와 소통 노력이 계속돼 상생과 협력의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에게 큰 응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묵묵히 달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한 모습으로 코끝 찡한 감동을 선사하는 크로스컨트리 한국 스키선수들처럼, 지금도 건설 중인 송전선로도 진심을 다한 소통과 상생의 노력으로 결승선에 무사히 도착해 국민들께 잔잔한 감동을 드릴 수 있는 국가의 기간설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구본우 한국전력 전력계통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