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자 일부 생계급여 줄어 ‘개정안’ 진통
입력 2014-02-24 01:36
정부가 대수술을 예고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2월 국회의 첫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제동이 걸렸다. 국회 보건복지위 마지막 법안소위가 결론 없이 마무리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 개정안은 4월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오는 10월로 예고된 맞춤형 기초보장제가 정부 일정표대로 시행되기는 쉽지 않아졌다.
◇법이냐, 대통령령이냐=현행 기초법은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빈곤층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한다. 입시 커트라인처럼 기준선(최저생계비) 이하는 혜택을 받고 나머지는 탈락하는 구조다.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①수급권자 선정기준을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으로 대체하고 ②급여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기준(예를 들어 생계급여 중위소득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3%, 교육급여는 50% 수준)을 적용한다.
전체 가구 소득의 한가운데를 뜻하는 중위소득은 절대적 개념인 최저생계비와 달리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 도움을 받는 빈곤층 규모와 급여수준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기초법 개정안에는 ‘중위소득 30%’ 같은 정부 예시 기준이 빠진 채 ‘중위소득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만 표현됐다. 구체적 기준은 전부 대통령령에 위임됐다.
시민단체들은 “대통령령에 위임한다는 건 재정 여건에 따라 정부 마음대로 대상과 급여액을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우려했다. 야당도 법안에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구체적인 수급권자 선정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에 넣으면 경기가 급변했을 때 급여 수준을 조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 임호근 기초생활보장과장은 23일 “현행 기초법에도 최저생계비 산정방식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고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다”고 말했다.
◇당장 돈이 깎이는 이들은 어떻게=예정대로 10월부터 새로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다면 수급자는 지난해보다 37만명 늘어난 176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생활비를 현금으로 지원받는 생계급여 수급자는 고작 5만명 정도 증가할 뿐이다.
게다가 기존 수급자 가운데 29만명은 법 개정 전보다 적은 금액을 받거나 수급자격을 잃게 돼 반발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들에게 한시적으로 기존과 동일한 금액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지원기간이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최종 제출한 수정안에는 수급자 개인별로 ‘보전액이 0원’이 될 때까지 지원하는 방식이 포함돼 있긴 하다. 예를 들어 163만원을 받던 수급자 A씨가 법 개정 뒤 123만원만 현금으로 받게 된다면 당분간은 차액 40만원씩 추가 지원을 받는다. 이듬해 1월부터 현금 급여액이 5만원 오르면 이 액수는 35만원으로 깎이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법안소위에 참석한 관계자는 “아직 논의 중이라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빈곤층의 마지노선, 최저생계비 사라지나=최저생계비 개념이 사라진다는 사실도 불안감을 키웠다. 참여연대 등 30개 시민단체는 지난 10일 ‘국민기초생활보장 지키기 연석회의(연석회의)’를 발족했다. 연석회의는 1999년 기초법이 제정된 뒤 15년 동안 중요한 사회적 지표로 쓰인 최저생계비 개념을 사회적 합의 없이 삭제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해당연도의 최저생계비는 한 번 결정되면 1년 동안 바뀌지 않는 금액인 데 반해 중위소득은 산정에 적용되는 가구소득의 범위나 연간 증가율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빈곤층 지원의 마지노선이 사라진다”는 시민단체의 우려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Key Word-중위소득
전체 가구를 소득에 따라 순위를 매겼을 때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 수준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위소득 50% 미만은 저소득층으로 분류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