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령 금융사 전화번호를 114에 등록, 사기행각 일삼아… 대출사기 피해 710억 환급 착수

입력 2014-02-24 01:35


“신용등급만 한 단계 높이면 저금리 대출 승인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통장 잔액이 300만원은 돼야 하는데, 돈을 보내주시면 작업하겠습니다.”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가 설립된 지 3년째로 접어들고 보이스피싱 등 각종 전자금융 사기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도 커졌지만 나날이 교묘해지는 대출사기 수법은 여전히 취약계층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대출 사기범들은 개인정보 유통시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저소득·저신용층을 표적 삼는다”며 “7월 말 피해액을 환급받을 5만5000여명 가운데 99%가 서민층이며, 그중 대다수는 고령층”이라고 밝혔다.

사기범 계좌의 지급정지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등 대출사기와 전쟁을 벌이는 금감원은 최근 발생한 신용카드사 개인정보의 대규모 유출이 사기 급증으로 이어지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출사기 피해자가 생계곤란 서민층임을 감안, 710억원을 환급하는 업무의 일환으로 피해자들에게 정부의 고용·복지 시스템을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114 동원 신종 수법도=금감원은 허위 금융회사의 전화번호를 114(전화번호 안내 서비스)에 등록, 저금리 대출을 알선하고 선입금을 받는 대범한 대출사기 수법이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23일 밝혔다.

‘씨티 서민금융지원센터’를 표방한 사기범들은 SK텔레콤에 위조된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해 114 등재를 요청했고, 등록된 전화번호로 뻔뻔한 영업을 이어갔다. 통신사들이 사업자 등록증의 위조 여부를 별도로 심사하지 않는 점을 파고든 신종 사기로, 114서비스에 번호가 등록돼 있으면 소비자들이 공신력 있는 금융회사로 오인하는 점을 노린 범행이었다.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를 통해 이 내용을 접한 금감원은 지난 20일 경찰청에 해당 전화번호와 사기 내용을 알리는 한편 씨티은행에도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

SK텔레콤에는 114 등재 취소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미래창조과학부에 금융회사 상호를 이용한 114 등재 요청에 대해 사업자등록증 위조 여부를 엄격히 심사토록 제도 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

대출사기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급선무는 사기범의 계좌를 동결하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기범 계좌에 남은 돈은 도합 710억원이지만, 실제 피해자들이 송금한 돈은 3500억원을 넘을 것”이라며 “사기범이 피해자와 통화하는 중에 텔레뱅킹을 이용, 금액을 인출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은 각 금융회사의 콜센터를 통해서만 계좌 지급정지가 가능하던 제도를 개선,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도 직접 지급정지를 조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최근 구축했다. 최초 피해사례 신고 이후 해당 금융회사에 전달, 지급정지 조치가 내려지는 과정에서 5∼10분이 더 소요되던 것을 단축한 것이다.

◇복지 연계로 피해 미연 방지=하지만 발빠른 지급정지 조치보다 중요한 것은 대출사기범이 활동할 토양을 애초에 없애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감원은 대출사기범의 숙주 격인 대포통장 단속을 강화하고, 취약계층이 대다수인 대출사기 피해자들에 정부의 고용·복지 프로그램을 연계하기로 했다. 돈이 있는 이들은 안 당하고, 돈이 없는 이들만 당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7월 29일 환급을 받기 시작할 기존 대출사기 피해자들이 이 정책의 대상이 된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환급 업무의 일환으로, 금융회사는 피해자들을 1대 1 면담해 고용·복지지원 대상자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급을 받더라도 피해 원금의 20% 수준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생계곤란 등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며 “일자리를 안내하는 등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추가 사기 피해를 막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