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의회 정부 구성 착수… 야누코비치 출국 실패

입력 2014-02-24 03:11


우크라이나 야당이 주도하는 라다(의회)가 23일 정부 구성 절차에 착수했다. 의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하루 전 의장에 선출된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에게 대통령 권한까지 이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날 황급히 수도 키예프를 떠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국경수비대원에게 뇌물을 주고 출국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 주도로 정부 구성=의회는 이날 회의를 갖고 투르치노프 의장에게 대통령 권한을 이전하는 결의안을 339명의 의원 출석에 285명이 찬성해 통과시켰다. 의회는 또 이날 저녁 새 총리 역시 선출할 것이라고 최대 야당인 ‘바티키프쉬나’(조국당) 원내 부대표인 니콜라이 토멘코 의원이 전했다. 그는 “의회 논의를 통해 연립내각 구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저녁에 총리를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 후보로는 하루 전 교도소에서 석방된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 바티키프쉬나 원내대표 아르세니 야체뉵, 무소속 의원 표트르 포로셴코 등 3명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티모셴코 전 총리의 선출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의회는 2일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과 5월 조기 대선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맞춰 야권 시위대는 수도 키예프 시내 대통령 행정실과 교외 대통령 관저를 장악했다. 의회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의회에 대폭 이전하는 내용의 이원집정부제 형식의 2004년 헌법 복원을 결의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총리 직은 지난달 말 니콜라이 아자로프 전 총리가 해임된 뒤 제1부총리인 세르게이 아르부조프가 대행해왔다. 의회가 대통령 퇴진과 5월 25일 조기 대선을 결의하고 새로운 정부 구성에 나서면서 기존 내각에서 직무대행을 맡아오던 총리와 장관은 대부분 경질됐다. 의회는 또 우크라이나어 외에 러시아어 등의 소수민족 언어를 지역 자치단체의 공식어로 인정해 오던 법률도 폐지했다.

◇야누코비치 출국 시도 실패=검찰총장직 수행 전권대표를 맡고 있는 올렉 마흐니츠키는 의회 질의에서 현재 수사팀이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빅토르 프숀카 전 검찰총장, 알렉산드르 클리멘코 전 국세청장 등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프숀카와 클리멘코는 22일 동부 도시 도네츠크 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하다 국경수비대에 체포됐으나 곧이어 공항 안으로 무장한 경호원이 침입해 총격을 가하면서 이들을 어딘가로 데리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수비대는 23일 새벽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도네츠크주에서 국경수비대원에게 뇌물을 주고 출국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모처로 도피했다고 전했다.

국경수비대는 “출국 서류 심사를 위해 수비대 직원이 공항 사무실로 나오자 무장한 사람이 돈을 건네며 서류절차 없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 전세기를 출국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어디로 가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내무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르센 아바코프 대행은 이날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야권 인사 석방에 관한 22일 의회 결의에 따라 오늘까지 64명이 석방됐으며 24일 나머지 3명이 석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키예프에서 빠져나온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하리코프에서 주요 정부 관계자들과 긴급 회동했다. 이 회의엔 러시아 고위 국회의원도 참석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회의에선 야권의 권력 찬탈에 대비, 군대를 동원해 세력 규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회와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정국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AP는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최고조의 정국 혼란 상황”이라며 “자칫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질 판”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권교체에 지지의 뜻을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긴급 성명에서 “라다의 조기 대선 실시 선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야권 지지자들의 행동을 광란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티모셴코가 총리에 선출되면 우크라이나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연합 문제 위원회 위원장 레오니트 슬루츠키는 “티모셴코가 총리가 되면 우크라이나 사태 안정화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이제훈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