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배병우] 존슨 전 대통령 재평가 바람

입력 2014-02-24 01:35


미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베트남 전쟁’과 동의어인 인물이다. 존슨 재임 시에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 북베트남과 전면전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약 6만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베트남 정글에서 피를 뿌렸고, 수백만명의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인들이 희생됐다.

존슨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미지가 어떠했는지는 당시 유행했던 반전가요 가사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헤이 헤이 L.B.J(린든 존슨의 머리글자), 오늘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를 죽였니?’

하지만 최근 베트남전에만 매몰된 존슨을 다시 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인종차별을 금지한 시민권법(Civil Rights Act)과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료품 지원제도), 헤드스타트(저소득층 자녀 취학전 교육 지원제도) 등 존슨이 주도적으로 제창해 입법에 성공한 ‘존슨 계획(Johnson Initiative)’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존슨 계획은 가난과 질병, 교육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정부가 책임져야 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진보주의 철학에 기반했다.

오늘의 미국이 존슨 계획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존슨 전기 작가인 도리스 키언스 굿윈은 “존슨이 백악관을 떠날 때 미국인들은 베트남전의 상처와 고난으로 감정이 격앙돼 베트남전을 넘어선 그의 업적을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재평가의 때가 도래했다”면서 “미국은 존슨의 재임기에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단언한다.

40년에 걸쳐 존슨 대통령 전기 시리즈인 ‘린든 존슨의 시대’를 쓰고 있는 로버트 A 카로도 이런 재평가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로는 존슨이 보수적인 남부 출신 지도부가 장악한 의회를 움직여 시민법권을 통과시킨 정치적 수완과 추진력은 ‘미국 대통령 리더십’의 표본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존슨의 시민권법 쟁취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연극 ‘올 더 웨이’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CNN방송의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 업무수행 평가에서 존슨은 지지율 55%로 9명 중 끝에서 세 번째였다. 해가 갈수록 그 순위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 존슨 지지자들에게 위안이다.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