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육사 “군사학·훈련에 성적 가중치”… 女風 잠재우기?
입력 2014-02-24 01:34 수정 2014-02-24 03:38
군 당국이 잇따른 ‘여학생 1등 기피 조치’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공군사관학교가 대통령상 수상자를 결정하며 수석졸업 여생도를 배제했다가 번복한 데 이어, 2년 연속 여생도가 수석 졸업한 육군사관학교는 올해부터 여생도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성적산출 방식을 도입했다.
여대가 2년 연속 훈련평가 1위를 차지한 ROTC(학군사관후보생)는 수십년 고수해온 ‘순위제’ 평가방식을 폐지했다. 여성에게 모든 문호를 개방했다고 홍보하던 군이 내부에선 여성의 약진을 차단하느라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육사는 올해부터 재학생 성적산출 방식을 변경했다. 비(非)군사 분야인 일반학 비중을 낮추고 군사학·군사훈련·체육·훈육의 비중을 높였다. 총 196학점의 성적을 가중치 없이 합산하던 기존 ‘학점제’에서 일부 과목에 가중치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일반학은 여학생 성적이, 새로 가중치가 부여되는 군사학·군사훈련·체육은 남학생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익명을 요구한 육사 여생도는 23일 “학교 측이 지난달 갑자기 성적산출 방식을 바꿔 올해 졸업식부터 적용하려다 여학생들이 반발하자 내년으로 미뤘다”며 “정원의 10분의 1에 불과한 여생도가 약진하니까 남생도에게 유리하게 평가기준을 바꾼 걸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여생도 역시 “육사는 졸업 순위에 따라 군번의 끝자리를 ‘001’ ‘002’ 순으로 부여해 군 복무기간 내내 영향력을 가진다”며 “이런 특성상 남생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ROTC는 숙명여대와 성신여대가 학군단 군사훈련 평가에서 2년 연속 1위를 하자 학교별 순위를 없애고 등급제를 도입키로 했다. 이에 ‘여대 기죽이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서열화가 주는 갈등과 위화감 문제가 있어서 순위제를 폐지하고 등급제로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등급제를 해도 학군단 순위 자체는 없어지지 않고 발표만 안 될 뿐이어서 궁색한 해명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여대 ROTC 생도는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순위제를 폐지한 군 당국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여군을 꿈꾸는 학생들의 사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꺾는 것 같다”고 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최근 육·해·공사와 ROTC에 지원하는 여학생이 크게 늘고 여학생이 입학 때부터 수석과 차석 등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추세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졸업성적이 향후 군 생활의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여학생 1등 졸업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군 내부에 존재한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군이 상황에 따라 수상자나 규정을 바꾼다면 여생도들은 물론 성차별이라는 사회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여생도가 늘고 있는 만큼 이성적이고 명확한 원칙을 만들어 예외 없이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