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6) 고교시절 과외하며 10의 5조… 주님은 더 큰 선물을
입력 2014-02-24 01:39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영어와 수학 때문에 애를 먹었다. 여러 시험과목 가운데 하나라도 기준 점수에 미달하면 불합격이었는데 두 과목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2년간 도전하다 실패하고 충주로 다시 내려갔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큰누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동창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문을 두드릴 때 나는 다시 머리를 박박 깎고 두세 살 어린 후배들과 충주고등학교를 다녔다.
2년간 선행학습을 한 덕분에 나는 고교 1학년 때 전교 1등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공부를 곧잘 한다는 소문이 나자 교회의 한 집사님으로부터 과외교습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동안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며 돈을 벌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미국의 워너메이커백화점 설립자인 존 워너메이커를 예로 들며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다. 워너메이커는 십일조 이상을 하며 살았는데도 막대한 부를 누리며 살았다는 말씀이었다. 워너메이커처럼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으로서의 한 예를 드신 것이다.
‘아, 십일조라는 게 그런 것이구나’라고 나는 되뇌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만5000원 정도를 받았고 10의 9조를 드리려고 했는데 교통비가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께 양해를 구하고 10의 5조만 드리기로 했다. 나름대로 정말 큰 결심이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하나님께 드리느냐고 묻지는 마시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내가 세상을 떠난 뒤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다는 약정서를 얼마 전 총회에 제출했다. 스스로 밝히기는 낯 뜨거운 얘기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은 내 평생의 진심을 담아 약정서를 썼다.
아무튼 고교 2학년 때 과외교사를 그만뒀다. 이후 사례금의 절반을 헌금으로 드린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린 학생의 그 10의 5조를 잊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필자를 부르셨다. 고교 3학년생들을 위한 학습지를 나눠주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몇 명이 구독할지 파악해 학습지를 만드는 회사에 알려주고 구독료를 걷어 보내주는 일이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대박이었다. 고3 학생 200여명뿐 아니라 다른 학년 학생들까지 신청해 구독자는 400명 정도 됐다. 가정교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입이 생겼다. 수업료를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 루터신학원 등 10년의 신학수업 과정 대부분을 장학금으로 공부하게 해주셨다. 어떤 때는 두 곳에서 장학금을 받아 막내 동생의 대학등록금에 보태고도 돈이 남아 스테레오라디오를 사서 듣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또 부임 당시 1000만원의 빚이 있던 교회에서 시무했는데 떠날 때에는 6000만원을 남겨놓을 수 있었다. 총회장이 됐을 때에는 IMF 외환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총회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면 돈이 남지 않았었다. 그런데 임기를 마쳤을 때에는 12억원의 헌금을 후임 총회장에게 전해드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늘 축복으로 필자를 인도해주신 것 같다. 세상에서는 십일조를 헌금을 거두려는 얄팍한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필자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이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