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유혈 사태로 치달으면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대체 정부는 왜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게 됐고, 수만명의 시민들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시위를 이어가는 것일까.
◇시위가 촉발된 계기는=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추진하던 무역협정을 중단하면서 시위가 처음 발생했다. 이 협정은 EU와의 무역량을 늘리고 기술 교류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EU와의 정치적 유대관계도 긴밀해 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1일 돌연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왜 무역협정을 중단했나=러시아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EU와 협정을 체결할 경우 무역 제재를 가하고 천연가스 가격을 올리겠다고 위협했다. 대신 러시아와 관세 동맹을 맺으면 천연가스 가격을 할인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협정을 중단했다는 지적도 있다. EU는 수감 중인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의 석방을 원했다. 티모셴코 전 총리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최대 정치 라이벌로 징역형을 선고받을 당시 정치 개입 논란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위는 누가 주도했나=처음 시위가 시작될 때 특별히 주도 세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EU와의 무역협정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후 시위대는 점차 조직적으로 변했고 권투 헤비급 세계챔피언 출신 야권 지도자 비탈리 클리츠코가 시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르세니 야체뉴크 조국당 대표가 시위를 이끌고 있다.
◇시민 반발에 대한 초기 정부 대응은=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가 자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150억 달러(약 16조875억원)의 차관을 지원하고 천연가스 공급가를 30% 이상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시위가 계속되자 정부는 집회·시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결국 시위를 격화시킨 꼴이 됐다.
이에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유화 조치를 취했다. 그는 니콜라이 아자로프 총리가 제출한 내각 총사퇴서에 서명했다. 의회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집회·시위 규제법도 일괄 폐지했다. 하지만 야권은 대통령 자진 사태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화해 국면은 없었나=정부 측은 지난 14일 시위 과정에서 체포됐던 시위대 234명 전원을 석방했고, 야권 시위대는 16일 키예프 시청 등 점거했던 건물에서 철수했다. 대통령 집무실 등 주요 관청이 몰려 있는 그루셰프스키 거리에 대한 봉쇄도 해제해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18일 상황은 다시 최악으로 치달았다.
◇시위가 다시 격화된 원인은=야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총리와 내각을 의회가 임명하는 내용의 헌법 수정안을 상정하려 했지만 여당이 이를 제지했다. 이에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야당 스보보다당을 필두로 수천명이 의회로 진격했다. 러시아가 계속해서 돈으로 우크라이나를 통제하려고 시도한 것도 시위가 격화된 배경으로 비쳐진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배경이 있나=우크라이나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동부와 친유럽 성향의 서부 간 오랜 지역 갈등을 겪고 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동부를 정치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반면, 반정부 시위대는 서부 출신이 대부분이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러시아 노선을 걸으면서 이 지역 부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후원받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유럽과 인접한 서부 지역은 옛 소련(현 러시아) 시절 스탈린 정권의 횡포로 국민 500만∼1000만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를 겪은 후 러시아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지니고 있다. 이렇다보니 정부가 유럽과 러시아 중 어느 편에 설지 여부를 놓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포기 못하나=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러시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큰 영토를 가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유라시아 지역의 패권을 잡기 위해선 놓칠 수 없는 핵심 국가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서유럽으로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깔려 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 쪽으로 넘어갈 경우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가 우크라이나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 반응은=미국·EU 등 각국은 이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국과 EU 측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강경 대응을 비판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히 EU는 이번 사태 관련 인사들에게 비자 발급 중단 등의 제재 조치를 내놓았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자 현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마저 약속한 차관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향후 전망과 돌파구는=정부와 야권은 일단 사태 해결 방안에 합의한 상태다. 이로 인해 진정 국면에 들어설 수도 있다. 타협안이 순조롭게 추진되면 9월쯤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12월쯤 조기 대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수도 키예프에서 촉발된 시위는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이라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격 야권 세력이 합의에 반발할 경우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U와 무역협정 중단 반발… 러시아 압력 작용’ 우크라이나 유혈사태 원인·전망
입력 2014-02-22 03:28 수정 2014-02-22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