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지난 세월 이야기하며 웃음꽃… 납북어부 형제 ‘러브샷’
입력 2014-02-22 02:31 수정 2014-02-22 15:04
이산가족 1차 상봉 이튿날인 21일에는 개별상봉과 공동 오찬, 오후 단체상봉이 진행됐다. 첫 만남 당시 울음바다였던 상봉장은 어느새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상봉 대상자들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얼어붙었던 마음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 듯했다.
◇이야기꽃과 러브샷…체제 발언에 서먹하기도=외금강호텔에서 오전 9시부터 시작된 개별상봉에서 상봉 대상자들은 준비했던 선물을 주고받으며 지나온 세월 이야기에 푹 빠졌다. 남측 가족들은 주로 생필품과 의약품, 내의, 방한복, 초코파이 등을 건넸고 북측 가족들은 대부분 전통술과 테이블보를 선물로 내놨다.
김용자(68·여)씨는 최근 숨진 어머니 서정숙씨를 대신해 어릴 적 헤어진 동생 영실(67·여)씨를 만났다. 원래는 어머니 서씨가 상봉 대상자였지만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뒤 갑자기 심장병으로 숨을 거뒀다. 김씨는 “생전 어머니는 ‘우리 영실이 한번 보고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면서 “(영혼이라도) 아마 어머니가 같이 오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단체상봉에서 동생에게 어머니 영정사진을 보여주며 “엄마, 얘가 영실이예요, 잘 보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세린(85)씨는 여동생 영숙(81)씨와 조카 김기복(51)씨를 만나 형제들이 북한에서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뿌듯했다. 김씨는 “(북측의) 남동생이 3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웠지만, 해주 의과대를 나와 중앙의료원 같은 곳에서 내과 과장을 했다고 한다”며 동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개별상봉에서 일부 북측 가족들이 “수령님이 다 해주셨다”는 등 북한 체제에 대한 선전성 발언을 하면서 서먹한 순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상봉에 이어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오찬에서도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납북어부 형제인 박양수(58)·양곤(52)씨는 중식 자리에서 취재진의 권유에 팔을 걸고 ‘러브샷’을 했다. 북측의 형 양수씨가 ‘러브샷’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동생 양곤씨가 팔을 걸고 방법을 알려줬다.
오후 4시부터 이어진 단체 상봉에서도 밝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몇몇 테이블에서는 다시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씩씩했던 양곤씨도 갑자기 “아이고, 형님”하고 오열하며 형 양수씨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일 또 만나잖아요. 오늘은 웃읍시다”라는 위로의 말도 들렸다. ‘고향의 봄’을 함께 부르는 가족들도 있었다.
◇구급차 상봉 뒤 때 이른 작별=건강 탓에 구급차 상봉을 했던 홍신자(84·여)씨와 김섬경(91)씨는 이날 개별상봉을 마치고 먼저 남쪽으로 내려왔다.
홍씨는 개별상봉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동생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안타깝고 슬프기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씨의 여동생 영옥(82)씨는 마지막으로 구급차에서 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언니, 나 기쁜 마음으로 간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며 울먹였다.
김씨는 개별상봉에서 북측의 아들·딸에게 치약, 비누 등 생필품을 건넸다. 아들 진황씨가 “아버지 여한이 없으시죠?”라고 묻자 김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구급차에서 작별하면서 북측의 딸 춘순(67)씨는 “아버지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요”라며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사를 건넸다.
개별상봉을 마친 홍씨와 김씨를 태운 구급차는 낮 12시30분쯤 금강산을 출발한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동해선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했다.
◇북측 관계자, “김연아 선수 금메달 땄습니까”=상봉행사 진행을 위해 나온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상황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관심도 많았다. 한 안내요원은 “김연아 선수 금메달 땄습니까”라고 물은 뒤, 은메달을 땄다는 대답을 듣고는 “은메달도 대단한 거지요”라고 말했다. 북측의 한 기자는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만들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불리한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들은 또 그동안 남측 언론 보도에 불만이 많은 듯 “남한 정부는 왜 언론을 잘 다스리지 못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쿠키뉴스 등 인터넷 언론의 이념성향이나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서도 질문하는 등 남측 언론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민감한 질문에는 냉정하게 답을 하기도 했다. 북측의 한 인사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 묻자 “천안함 사건은 진상규명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 진상 조사단에 북측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인사는 장성택 처형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우리는 수령과 당이 일체다. 종파는 인정이 안 된다”고 짧게 답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