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금리 ‘검은 거래’ 의혹] 공정위·금융사 어느 쪽 말이 맞는 걸까… CD금리 담합 미스터리

입력 2014-02-22 01:31


2012년 7월 국내 증권사와 은행들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공정위는 각종 예금·대출 상품의 금리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금융사들이 담합한 의혹이 있다며 금융권을 벌집 쑤시듯 뒤졌다. 금융사는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정황증거는 완벽한데…

2012년 7월 17일 국내 증권사 10곳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유진·대신·리딩투자·메리츠·부국·한화·HMC투자·KB투자·KTB투자·LIG투자증권에서 CD금리 책정 자료를 샅샅이 확보했다.

공정위의 조사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불똥은 은행으로 튀었다. CD금리를 담합했다면 CD 발행의 주체인 은행을 뒤져야 했다. 조사대상은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과 SC·농협·HSBC·부산·대구은행 등이었다.

당시 은행과 증권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을 뺐다. 하지만 금융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한 신문사는 “한 금융회사가 (CD금리)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며 불을 더욱 세게 지폈다. 은행연합회에서 열리는 ‘자금부서장간담회’가 담합 창구로 쓰였다는 구체적 증거까지 제시됐다.

공정위는 자신감이 넘쳤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통상 담합과 관련된 조사는 신중을 기하는 편”이라며 “이틀에 걸쳐 금융기관을 뒤지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담합 관련 조사’라는 내용까지 기자들에게 확인해 줄 정도였다. 1000조원에 달해 한국경제의 뇌관이 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공정위가 칼을 꺼내들었다는 긍정적 분석도 곁들여졌다.

담합은 사실로 보였다. 실제 수개월간 요지부동이었던 CD금리가 공정위 조사 직전 거짓말처럼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 대상인 CD 91일물의 금리는 2012년 2월 29일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직전인 그해 7월 11일까지 4개월이 넘도록 3.54∼3.55%에서 변하지 않았다. 4월 9일부터 석 달은 3.54%로 아예 고정돼 있었다. 게다가 2012년 7월 12일 하루에 0.27% 포인트가 추락하며 의혹을 키웠다.

답은 안 나오고…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2012년에 충만했던 공정위의 자신감은 사라졌다. 여전히 공정위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CD금리 조사에 대해 묻는 것이 꺼려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012년 8월 김동수 당시 공정위원장의 말은 허언(虛言)이 됐다. 그는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가급적 빨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이 말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대래 현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CD 금리 담합 사건 조사 와 관련 “누가 봐도 위반이 명확할 때 결론을 내리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금융권에서는 공정위가 ‘헛발질’을 했기 때문에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피해의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이 아니라 누가 봐도 담합할 이유가 없는데 공정위가 관련 자료를 잘못 이해해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이다.

조사 당시를 거꾸로 짚어도 황당한 사례는 쏟아진다. 공정위가 조사를 나오기 수년 전부터 CD를 단 한 건도 발행하지 않았다는 A은행의 관계자는 “CD 발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조사관이 와서 이것저것 봤다. 그런데 발행한 자료가 없으니 가져간 자료도 없지 않았겠느냐”며 “조사는 그날 하루 그냥 허탕친 걸로 끝났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B은행 관계자도 “채권발행 팀장하고 직원 PC 저장 내용·채권거래 관련 기록을 가져간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 CD 발행실적이 2010년 이후로 없는데 그거 본다고 뭐가 나오겠느냐”고 되물었다.

CD의 발행 주체인 은행들은 금리를 조작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CD를 발행만 할 뿐 금리를 결정하는 곳이 아닌데 어떻게 금리를 만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C은행 관계자는 “그때도 한 은행에서 다른 상품에서 실수로 금리를 잘못 고시했는데 이를 담합으로 보고 나온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며 “결과를 내린 뒤에 무리하게 몰고 가려는 것 같다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실제 CD금리 결정은 증권사가 한다.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CD를 10곳의 증권사가 평가 후 금리를 산정해 하루 두 차례 금융투자협회에 보고하는 식이다. 금투협은 보고 받은 10건의 CD금리 중 최고·최저치를 제외한 뒤 남은 8건의 평균을 계산해 그날의 CD금리로 고시한다.

그렇다면 금리를 정하는 증권사들에 의혹의 가능성은 남아 있지 않을까. 증권사들은 “실익이 조금도 없는데 의혹 살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다. 발행과 유통의 중간단계자일 뿐 중간에서 얻는 수익이 없기 때문에 조작의 필요성 자체가 없다는 설명이다.

D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는 중개만 할 뿐이고 그 당시에는 거래조차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E증권사 관계자도 “의혹이 제기됐지만 뚜렷한 혐의를 찾을 수가 없어 조사가 흐지부지되는 상황 같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조사관이 CD와 전혀 관계가 없는 CDS(신용디폴트스와프)프리미엄 자료를 들고 CD금리 아니냐고 물었다는 촌극도 전해진다.

권혁세 당시 금감원장은 조사가 한창 이뤄지는 상황 속에서도 “자금조달 부서가 CD발행을 담당하는데 굳이 금리를 높여 조달 비용을 비싸게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담합 의혹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한 여름 밤의 꿈이었나…

공정위가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관련된 각종 소송은 산으로 가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모씨 등 소비자 3명이 은행이 CD금리를 담합해 피해를 봤다며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씨 등은 공정위 조사에 기대를 걸고 소송을 진행했다. 공정위가 제기한 의혹처럼 은행들이 CD금리를 담합했고 이 때문에 과도하게 높은 대출금리를 내야 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사자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은행들이 CD금리를 인상하거나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담합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결정했다.

금융소비자단체가 제기한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2012년 11월 금융소비자원은 소비자 2400여명을 모아 50억원가량의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냈었다. 이렇다 할 진행이 이뤄지지 않자 금소원은 공정위원장 면담을 요청하고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유야무야 지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 와서 공정위가 어떤 결과를 내놓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결국 금융사 공정위 소비자 모두 얻는 것 없이 그렇게 잊혀질 사건”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