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밥’ 밥이라고 쓰고 은혜라고 읽는다… 교회 식탁의 위기
입력 2014-02-21 17:47 수정 2014-02-22 01:33
‘먹방(먹는 방송)’ ‘소울푸드(soul food)’ ‘치느님(치킨과 하나님의 합성어)’ ‘푸드포르노(food porn·식욕을 자극하는 사진이나 영상)’…. 모두 음식과 관련된 신조어다. 현대사회에서 음식은 생존의 의미를 넘어선 지 오래다. 어느새 먹는 행위는 취미이자 종교가 됐다. 미디어는 경쟁적으로 먹방을 내보내고, 대중은 이를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됐다.
교회는 다르다. 식탁 위 만남에 큰 의미를 둔다. 대부분의 교회가 주일마다 예배 후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게 대표적 예다. 하지만 최근 초대교회부터 지금껏 계속된 이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 밥상을 준비하는 손길을 섬김에서 노동으로 인식하면서 빚어진 세태다.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하는 1인 가구 시대, 밥상을 둘러싼 교회 문화는 지속될 수 있을까.
이웃과 함께 나누는 교회 밥상
“권사님께서 만든 밥을 먹으니 은혜가 넘치네요. 이른 아침에 챙겨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오병주(28·공무원 시험 준비생)씨가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만양로 강남교회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한 말이다. 두 달 전 노량진 고시촌에 둥지를 튼 오씨는 교회가 선교활동이 아닌 수험생 밥상 마련에 열심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 교회는 2000년부터 인근 수험생을 위해 아침밥을 지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는 교역자의 질문에 ‘아침밥이 절실하다’는 수험생들의 답이 계기가 됐다. 오전 5시쯤 식사 준비를 하고 6시30분부터 배식해 일명 ‘새벽밥 사역’으로 불린다. 15명의 교회 권사들과 청년들이 매일 300명 안팎의 수험생 새벽밥을 책임진다. 2년 전부터 설거지 봉사를 한 김보경(31)씨는 “수험생 가운데 교회에 후원·봉사를 하라고 하지 않아도 고맙다며 스스로 첫 월급을 보내고 설거지에 참여하는 이들이 꽤 된다”면서 “시험 준비로 지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 기쁘게 섬기고 있다”고 했다.
전남 순천의 빛보라교회는 지난해 건물 지하 1층에 ‘착한밥상’이란 식당을 열었다. 싼 값에 질 좋은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의지를 식당 이름에 담았다. 한 끼 가격은 3500원. 1식 7찬의 푸짐한 상차림에 인근 회사원과 주부, 관광객까지 이곳을 찾는다. 반찬가게를 했던 이 교회 집사 부부의 솜씨 덕에 ‘순천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서다. 매일 300여명이 이곳에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데 교회 성도는 5%도 채 되지 않는다.
김종옥(51) 집사는 “요즘 불신자에게 무턱대고 전도하면 거부감을 느끼지 않나. 자연스레 교회문화를 접하게 하자는 담임전도사의 제안에 따라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익은 모두 반찬 준비에 쓰지만 양질의 식재료를 사느라 계속 적자다. 그럼에도 김 집사는 밥상 사역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처음엔 손님들이 식당이 교회에 있다며 오길 꺼렸다. 하지만 식당과 다름없는 맛과 분위기에 이제 부담 없이 찾아온다”며 “초대교회 공동체를 본떠 국내외 이웃을 밥과 문화로 섬길 수 있도록 온 성도와 목회자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다 콤플렉스에 빠진 교회
맛과 정성이 담긴 교회 밥상 이면엔 봉사자의 노고가 있다. 봉사자는 대부분 주부인 교회 권사나 집사. 이들은 일요일 점심뿐 아니라 주중 교회 행사의 식사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A권사(55)는 매주 이틀 정도 식사 준비를 위해 교회를 찾는다. 오랫동안 식당에서 봉사한 그가 안 가면 노숙인 봉사나 지역노회 행사, 교회 손님대접 등 교회 행사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 자녀가 어린 집사들은 부엌 봉사를 지원하지 않는 데다 직장에 다니는 권사가 늘어 A권사는 매번 식사당번을 도맡았다. 그는 “주부라도 수십 명의 밥을 준비하는 건 고된 일인데 모든 행사에 당연히 이름이 포함돼 있을 때 속상하다”며 “젊은이처럼 예배와 모임만 하면 불만 없이 교회를 다닐 텐데, 후임자가 없어 그러기도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A권사처럼 교회의 궂은 봉사에 몸과 영성이 지쳐버린 경우를 ‘마르다 콤플렉스’에 빠졌다고 한다. 마르다 콤플렉스는 누가복음 10장 38∼42절에서 파생됐다. 예수의 말씀보다 일하는 것을 선택한 마르다의 모습을 빗댔다. 교회 일에만 몰두하는 이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처럼 봉사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성도가 늘자 교회 화장실 청소나 식사 준비를 외주업체에 맡기거나 봉사자에게 일당을 주는 교회도 늘고 있다. 노회 행사 등 일손이 많이 필요한 경우엔 출장뷔페를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봉사가 일이 되면 예수를 닮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다. 섬기는 일을 기피할수록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밥상도 예배다
그렇다면 A권사는 무리해서라도 식사 봉사를 계속해야 할까. 교회 사역자들은 섬김에 사명감을 가지되 예배 또한 중시하는 태도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허기복 밥상공동체 대표는 “초대교회 교인들은 공동식사인 ‘아가페 식사’를 하며 서로 가져온 음식을 나눴다. 이로써 공동체에 궁핍한 사람이 없게 됐다”며 “처음부터 교회는 밥을 나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또 허 대표는 밥상 나눔의 중요성에 대해 교회가 성도에게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어로 예배는 서비스(service)다. 형제자매를 섬기는 걸 감사하는 게 예배라는 것”이라며 “밥상 봉사는 교회와 이웃, 더 나아가 사회를 섬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우려했다.
교회 내 세대 간 차이를 감안해 밥상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산철 크리스천라이프센터 사무총장은 “센터에서 김장 나누기운동을 펼치려 해도 성도들이 김장을 안 한다며 참여하지 않는 교회가 최근 부쩍 늘었다”며 “젊은 세대는 전업주부보다 직장인이 더 많아 봉사 경험도 적고 할 시간도 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와 성도가 서로 윈-윈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사무총장은 “간단한 다과로 식탁을 차리는 게 오히려 예배와 교제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교역자, 장로 등 식당 봉사 참여 인원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