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믿음 난다 “밥 먹고 합시다”… 교회 식탁 세가지 풍경, 세가지 맛
입력 2014-02-21 17:47 수정 2014-02-22 01:32
영국 복음주의 교회운동가인 팀 체스터는 “친밀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밥상이 그리스도인들의 활동 무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책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에서 체스터는 ‘식사와 복음’이라는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식사가 그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명과 베풂, 섬김과 감사의 의미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회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밥상에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교회를 한번 둘러보자.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음성. “식사하셨어요? 밥 한술 뜨고 가세요.” 밥을 먹자는 것은 이야기 좀 하자, 교제하자는 의미다. 교회에서 밥을 나누는 행위는 마음이 오가는 사랑의 표현이다. 관심이다. 밥을 나누는 교회 공동체는 그래서 아름답다.
함께 먹는, 밥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부산 로고스교회 주일 풍경은 한마디로 ‘잔치’다.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의 손에는 성경·찬송가와 함께 뭔가 하나씩 들려 있다. 오전 11시 성도들은 전 주에 전달받은 성경 본문을 함께 묵상하고 말씀을 나눈다. 김기현 목사가 10분 정도 메시지를 전하고 나면 12시30분쯤 된다. ‘밥상’을 차린다. 그리고 각자 들고 온 것들을 상에 펼쳐 놓는다. 함께 나눌 음식이다. 밥과 국은 교회에서 준비한다. 로고스교회는 매 주일 예배를 드린 뒤 모두 함께 밥을 먹는다. 다소 번거로울 것 같은 이 사역에 대해 김 목사는 “교회 공동체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뭔가 일을 진행하실 때 이벤트를 열지 않으셨다. 같이 식사하셨다. 밥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다보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귀 있는 자는 구원을 받았다. 교회는 밥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영의 양식 ‘말씀’과 일용할 양식 ‘밥’을 나누는 곳이다. 김 목사는 “그러면 성도들은 식사를 같이 하는 ‘한솥밥 식구’가 된다”며 “주일에 못다한 이야기는 주중에 만나 밥을 먹으며 교제를 계속 이어간다”고 했다.
부산 온천교회(안용운 목사) 주일 식당 ‘밥상 차림표’는 국수와 김치다. 식당운영위원장 김덕규 장로는 “주일날 생명의 말씀을 듣고 교회 식당에서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천국을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하는 일”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밥상 교제’를 권면한다. 식당 봉사자들은 매 주일 10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국수를 삶는다. 큰 가마솥에 국수를 넣고 어느 정도 삶아지면 국수를 꺼내 찬물을 부어가며 씻는다. 김 장로는 “주방에 쭈그려 앉아 국수를 삶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버겁지만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회는 성도 모두가 함께 먹는 ‘밥상’을 위해 매달 첫 번째 주일에는 부목사들까지 나서 주방 봉사에 참여한다.
김 장로는 “교회 식당 사역을 하면서 코이노니아를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분과 신분에 상관없이 함께 먹는 밥에서 오는 친근함이 코이노니아라는 것. 이렇게 교회에서 먹는 밥에는 환대가 있다. 나눔과 교제가 있다. 그 작은 밥상에서 은혜가 일어난다.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함께 만드는, 밥
교회의 사회봉사를 의미하는 ‘디아코니아’는 헬라어로 ‘식탁에서 시중드는 일’을 뜻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식당 봉사는 여성 성도의 고유 권한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남성 성도, 남성 사역자들이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봉사하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경기도 평택 제자들루터교회(김경회 목사)의 주일 식당 풍경은 여느 교회와 많이 달랐다. 예배가 끝나자 남성 성도들이 식당으로 들어와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과 홀에서 일을 찾아 한다. 남성 성도들은 익숙하게 밥과 반찬을 그릇에 담아 성도들에게 즐겁게 배식했다. 목장별로 순번이 정해져 있는 식당 봉사는 처음에는 여자 목장만 했다. 그러다 남편들이 동참해 아내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봉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경회 목사는 “교회의 본질은 예배인데 나눔과 섬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복음이 흐려질까 우려됐다. 그래서 청소와 주방 일을 용역으로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도들이 교회 일에 동참해야 한다며 직접 나섰다. 김 목사는 “가정에서도 가장이 일을 하듯 남자들이 교회에서 일을 해야 올바른 것 같다”며 “그래서 장로를 임명할 때 앞치마를 선물한다”고 말했다. 성도들의 참여로 아낀 용역비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준다.
식당 봉사를 5년째 하고 있는 윤석원 장로는 “집에서도 가끔 설거지를 하는데 그러면 아내가 좋아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남자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예온교회 김정식 목사는 ‘요리하는 목사’라고 불린다. 그의 목회철학이 사랑 나눔이며 그 나눔의 방식이 밥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난 이후 밥을 매개로 다양한 사랑 나눔, 교제를 하고 있다. 그 스스로 ‘손맛으로 사랑을 전하는 요리하는 목사’라고 말한다.
그의 독특한 신앙고백 방식인 음식 나눔은 목회철학에 그대로 반영됐다. 칼국수 요리가 특기인 김 목사는 칼국수가 메뉴인 날은 직접 만들어 성도들과 나눈다. 그에게 밥은 배부름이 아니라 나눔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그 자체로 사랑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함께 만나는, 밥
예수는 제자들을 부를 때 그들의 일터로 찾아가셨다. 바닷가로 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나를 따르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마 4:17∼22).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이처럼 직장을 찾아 심방하는 경우도 있다. 또 가족이 집에 다 모이기 어려워지면서 1대 1 심방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목회자가 심방을 하게 되면 말씀을 나누고 기도한 뒤 식사를 한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들었던 A씨. 최근 부목사와 권사가 직장을 찾아왔다. 목사는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자상하게 물었다. “집사님,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으셨으니 그 안에서 행하세요(골 1:6∼7).” 목사는 말씀을 전했다. “직장에서 잘나가서 나중엔 사장까지 꼭 될 거예요.” 목사의 농담에 나중에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A씨는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말씀을 들으니 큰 위로가 되고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경기도 오산 대한성공회 제자교회 김장환 사제는 교인들의 일터를 자주 찾는다. 김 사제는 “가게나 회사에서 교인들을 만나면 더 가깝게 말씀을 나누고 식사 교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도가 평일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면 직장을 방문해 말씀을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한다”며 “식탁 교제를 통해 더 친밀해지고 그 안에서 신앙 고백이 더욱 풍성해진다”고 말했다.
마침 교회들이 봄 대심방을 진행하거나 앞두고 있다. 요즘은 전통적 ‘가정심방’이 줄고 ‘개인심방’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경기도 용인 생명샘교회 오순자 부목사는 “신앙적 어려움이나 삶의 고민을 더 깊이 듣고 상담하기 위해 장소에 큰 구애 받지 않고 1대 1로 약속을 잡아 대화하고 식사한다”고 말했다.
장 칼뱅은 바울의 말(행 20:20)을 인용해 집집마다 다니며 설교하라고 했다. 직장심방은 그 자체가 찾아가는 설교이자 교제다. 목회자는 직장심방을 통해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상담할 수 있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교인은 맞춤형 설교를 듣고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신앙적 영양분’을 공급받게 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