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베 정권 이젠 ‘고노 담화’까지 부정할 참인가

입력 2014-02-22 01:51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河野) 담화를 훼손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담은 역대 정부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뜻을 유지해온 아베 내각이 갑자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내용을 조사하겠다는 것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내각부 차관급을 참석시키는 것도 우리에 대한 도발 행위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가 담화 검증에 나설 경우 악화일로인 양국 관계가 더욱 파국으로 치달을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담화 검증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이지 않다는 보수·우익 세력의 주장이 확산된다면 일반 국민들까지도 고노 담화를 부정할 것이 명백하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 복원을 바란다면 일본은 즉각 이번 방침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일 연쇄방문을 앞두고 최근 두 나라 관계개선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일이 발생한 것은 더욱 우려스럽다. 다음 달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정식 또는 약식으로 정상회담을 할지가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가운데 불거진 이번 검증은 걸림돌임에 틀림없다. 아베 내각이 겉으로는 양국 정상회담을 원하는 것처럼 하면서 속내는 다르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우파 정치인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있는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소녀상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재미 일본계 인사들이 철거를 요구하는 소송까지 제기한 것도 고노 담화 무력화 시도로 비친다. 우리가 멈칫할 경우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과거사 부정 움직임이 전방위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이례적으로 새벽 논평을 냈다.

고노 담화 검증과 독도 도발은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역사 왜곡의 본질로 양국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전후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물론 평화의 가치를 중시해온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