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규의 성서 한방보감] 관찰과 평가

입력 2014-02-22 01:32 수정 2014-02-22 11:15


사람은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좋은 평가의 칭찬이든 나쁜 평가의 비난이든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에 대한 평가를 잘 한다. 한의학에서 기는 항상 가볍게 팽팽 잘 돌아야 건강하고, 혈은 맑고 깨끗해야 건강한데 나쁜 평가를 받아 기분이 나빠지면 기가 무거워지고 체해서 기운과 피가 모두 잘 돌지 못하고 막히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평가 대신 관찰을 해야 한다. 마치 녹음기에 녹음되듯, 사진기에 찍히듯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말해야 한다. 그런 연습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상우는 어제 이유 없이 화를 냈다.’ 이 문장이 관찰인가 평가인가. 당연 평가다. 정확한 관찰은 상우가 화를 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우가 이유가 있어 화를 냈는지 정말 이유가 없이 화를 냈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화내는 상우를 보고 이유 없이 화냈다고 말하는 것은 평가이다. ‘우리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이 말도 영락없이 평가다. 좋다는 말이 무슨 기준에 근거한 것인지, 어떤 면이 좋은 것이고, 또 어떤 면이 안 좋은 것인지 화자가 스스로 평가해 버린 잘못된 문장이다. ‘우리 아버지는 말씀을 참 조리 있게 하시는 분이다’라는 말은 정확한 관찰이 된 문장이다. ‘우리 아이는 이를 자주 닦지 않는다.’ 이 문장 역시 평가하는 말이다. 자주라고 하는 말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화자 나름의 기준이 있어 그 기준대로 평가해 버리는 것에 근거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정확한 관찰의 문장이 되려면, 우리 아이는 이를 일주일에 한번밖에 닦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는 좋은 학교를 나왔다.’ 이 역시 평가형의 문장이다. 좋은 학교, 나쁜 학교를 구분 짓는 것은 엄연한 평가이며, 어떤 종류의 학교가 좋고 나쁜 것인지 정확한 구분도 없다. 자기식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이런 평가형의 문장을 우린 수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 ‘동원이는 나를 무시한다.’ 이 역시 평가형의 잘못된 문장이다. 무시한다는 말은 평가다. 정확한 관찰형의 문장으로 고쳐 쓴다면, 동원이는 내가 전화를 세 번 걸고, 문자를 두 번 보냈는데도 답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다. ‘회장은 회의시간에 내 의견을 묻지 않았다.’ 이것은 관찰형의 올바른 문장이다. ‘소라는 엊저녁에 TV를 보면서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이 역시 관찰형의 제대로 된 문장이다.

사람은 나쁜 평가를 받으면 기가 막혀서 ‘기막히는 일’이 생긴다. 기막히는 일이 생기면 신경증에 걸리고 소화장애도 생기며 불면증, 화병뿐 아니라 감기에도 잘 걸리고 관절염, 신경통에도 잘 노출이 된다. 사실은 알고 보면 모두 기가 차서 생기는 기막히는 병이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성을 내면 기가 역한다고 했다. 기가 거꾸로 돈다는 말이다. 기가 막히거나 체하거나 거꾸로 돌면 모두 병이 된다. 관찰이 아닌 평가, 그것도 제대로 되지 못한 평가를 받아서 기가 막혀 생기는 울화병들이다. 우리 몸은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으면 육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무섭다.

성경에도 보면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 역시 판단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뜻이고, 성경을 아무리 눈 닦고 봐도 칭찬을 많이 하라는 말씀 또한 없다. 칭찬 역시 사실은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히 관찰하는 사람, 관찰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럴 때 관찰하는 사람이나 관찰 받는 사람, 모두 기가 가벼워지고 건강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들어야 하는데, 사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그래서 자기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평가한다.

<김양규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