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성지순례의 위험과 유익
입력 2014-02-22 01:34
1018년 사순절 기간 어느 주일, 프랑스 리모주의 성 마르티올 수도원 교회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예배에 참석하려고 몰려들었다. 그러다 입구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려다가 교회당이 무너져서 52명의 순례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1120년 프랑스 베즐레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나려는 순례자들로 몹시 붐볐다. 출발 전날 밤 화재가 발생해 성당 본당에서 잠을 자던 순례객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1018년 사순절 기간 참사
1450년은 교황 니콜라스가 신자들이 죄사함의 은혜를 받도록 선포한 희년의 해였다. 축제가 절정에 달한 마지막 주간, 토요일이었던 12월 19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은 순례자들로 꽉 찼다. 모임을 파하고 돌아가는 길.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산탄젤로 다리로 몰려들었다. 때마침 무거운 짐과 두 여인을 싣고 다리를 건너던 당나귀가 맞은편에서 쏟아지는 군중들에 겁을 먹고 갑자기 뛰어올랐다. 이로 인해 말과 사람들이 뒤엉키고 밟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티베르강에 빠졌다. 그날 익사한 사람은 200명, 세 마리의 말들도 물에 빠져 죽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성지순례 중 일어난 참사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봐주셔서 험한 일들을 겪지 않으면 좋으련만 순례자들에게도 위험은 비켜가지 않았다. 15세기에 예루살렘을 두 차례나 방문했던 수도사 펠릭스 파브리는 순례기록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보통 말하기를 육로보다는 베니스에서 예루살렘까지 배로 가는 것이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이 믿음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지를 방문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대담무쌍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급하고 한가한 호기심만 갖고 순례를 시작한다. 그러나 성지를 순례하고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일은 각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항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와 중세 시대의 해외여행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2세기 영국 순례자들은 런던을 출발해 로마에서 한 주간 머물고 돌아오는 데 104일이 걸렸다고 한다. 15세기 프랑스 순례자들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데 10개월 보름이 걸렸다. 장기간 일정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여행의 위험들도 부지기수였다. 날씨 바람 파도 강도를 비롯해 질 나쁜 여관이나 속이는 상인, 질병, 음식, 언어소통, 성지를 지배한 이슬람과의 다툼 등 문제들은 많았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성지순례의 이런 위험성 때문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를 회개와 신앙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11세기에 이르면 성지순례는 완전히 대중화됐다. 왜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성지를 보려고 몰려들었을까.
4세기 말 노라의 수도사 파울리누스 감독은 말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계셨던 곳을 보고 경험하기를 원하는 고상한 열망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 세례받으신 요단강, 붙잡히신 겟세마네 동산, 정죄당하신 빌라도 재판정, 십자가의 나무, 갈보리 언덕, 장사되고 부활하신 무덤, 승천하신 곳들을 보려는 것은 참으로 영적인 열망이다. 그 모두는 이 땅에서 사셨던 하나님을 기억케 하는 것들이다. 과거의 유산은 오늘 믿음의 근거가 된다.”
당시 스페인의 수녀원장 에제리아가 전하는 성지순례의 현장은 이랬다. 고난주간에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자들은 매일 주님과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 사건들이 일어났던 바로 그곳에서 관련된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 수요일 겟세마네 동산에 모인 순례자들은 주님이 배신당하신 기록을 읽었다. 성금요일 골고다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기록과 구약의 예언을 읽었다. 순례자들은 감격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같은 시절, 베들레헴 수도원에 살며 라틴어역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제롬은 로마에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성지 방문의 가장 큰 유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유대 땅을 보아야만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제롬은 다른 곳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헬라어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배우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멈추지 않은 순례자 길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이 주로 찾는 성지들은 정치적, 종교적 분쟁지역이라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성지순례가 주는 유익은 여전하기 때문에 순례의 길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불상사가 이집트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 또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 116:15)는 말씀을 붙잡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기도하자.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