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늙어버린 우리 아들… 한번 안아보자”
입력 2014-02-21 02:34
60여년 만에 생면부지 아들 만난 강능환씨
“늙었다.”
아내와 헤어질 당시 아내 뱃속에만 있던 아들을 60여년 만에 처음 본 강능환(93)씨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듯 말을 뱉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울었다. 강씨는 6·25전쟁 1·4후퇴 때 결혼 4개월째이던 아내와 생이별을 했다. 당시 아내 뱃속에 있던 아들 정국(64)씨를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처음 만났다.
강씨는 이내 “한번 안아보자”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둘은 얼싸안고 눈물만 흘렸다. 그는 “감개무량하지.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랑 닮았지, 아들 모습을 보니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둘은 한눈에 봐도 부자지간으로 보일 만큼 쏙 빼닮았다. “아들을 보면 기억이나 날까” 하던 걱정은 기우였다.
북쪽의 아들 정국씨는 25세에 결혼했다고 한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없었고, 왼쪽 귀에는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강씨는 잊어버렸던 아내 이름이 ‘원순실’이라는 것을 아들 정국씨를 통해 다시 알게 됐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40여년 전인 1971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이름을 들으니 새삼 그리움이 북받쳐 올랐다.
강씨와 동행한 남쪽의 또 다른 아들 범린(52)씨는 이북의 배다른 형 정국씨에게 “제가 동생입니다 형님, 정말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범린씨는 정국씨에게 “형님 몇 살입니까? 저는 52세”이라며 붙임성 있게 말을 건넸다. 또 “아버지가 운동을 좋아하시는데 형님도 운동을 좋아하시느냐”며 “아버지는 지금도 게이트볼을 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신다”고 말했다.
정국씨는 처음 보는 이복동생 범린씨에게 쉽게 말을 놓지 못하고 “저도 운동 좋아합니다”고 답했다. 남쪽의 동생은 북쪽 형보다 키가 10㎝ 더 컸고 덩치도 훨씬 좋았다. 범린씨는 “아버지가 항상 명절 때 눈물을 흘리셨다. 고향에 가고 싶다고 했다”며 “이렇게 자리가 마련돼서 생각지도 못한 아들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감격에 젖은 표정이었다.
강씨는 이제라도 아들을 만나 여한이 풀린 듯한 얼굴이었다. 강씨와 함께 남쪽으로 피난 온 큰형도 고향을 그리워하다 100세가 되던 해 눈을 감았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