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매출 줄고, 세무검증은 강화되고… 자영업자는 어디로

입력 2014-02-21 02:31


과세 확충 VS 납세 고통

“불황으로 폐업할 고민까지 하고 있는데 있지도 않은 현금 매출(현금영수증 없는 매출)을 신고하라뇨? 이럴 때마다 정부가 너무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서울에서 한식당을 하는 A씨는 지난달 부가가치세를 신고하러 갔다가 세무서에서 “현금매출이 없을 수가 있느냐. 이렇게 신고하면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월 50만원의 현금매출을 추가한 자료를 다시 제출했다. ‘일단 들어오면 그냥은 안 끝난다’는 세무조사 얘기 앞에서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지금 그대로 신고해 봤자 얼마 뒤 수정 신고하라는 공문이 와서 더 귀찮아진다고들 했다. A씨는 “매출 50만원을 더해 늘어나는 세금액 자체보다는 가뜩이나 힘든 형편에 나라가 도와주기는커녕 자영업자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실제 A씨 사업장은 직장인이 많은 지역에 위치한 데다 메뉴 가격도 1인당 2만원 수준 이상이어서 원래도 현금 계산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불황이 계속되면서 전체 매출이 줄었다. 적자가 나는 달이 잦아지면서 건물주에게 올해 임대 계약이 끝날 때까지 가게를 인수할 사람이 안 나오면 폐업할 생각이라고 미리 통보까지 했다.

이렇다 보니 애초 월에 3∼4건 정도는 되던 현금 매출이 두세 달에 한두 건이나 생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도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는 손님들이라 기록이 남는다. A씨는 “요즘 5000원 미만 택시비, 커피 한 잔도 카드로 계산하지 않느냐. 요즘은 50∼60대 아주머니들도 자식 이름으로 현금영수증 처리를 한다”면서 “세금 양성화한다고 카드, 현금영수증 처리를 독려한 게 정부인데 영수증도 없는 현금 매출을 내놓으라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해 종합소득세를 신고했다가 “업장 임대료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소득세 수정신고 안내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임대료가 비싼 곳은 가게가 크고, 위치가 좋으니 매출도 높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B씨는 “매출이 줄었는데 임대료가 비싸면 당연히 소득이 적어지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경제가 좋을 때와 지금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 세수 확보 등을 내세우며 자영업자의 세금신고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영업자들은 계속된 불황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국세청의 세금 신고 검증 강화가 자칫 ‘쥐어짜기식’으로 비쳐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적은 현금 매출’은 일단 의심, 무리한 쥐어짜기 지적=실제 일선 세무서에서는 과거 관행이나 업계 통계(분석비율) 등을 근거로 자영업자들이 현금 매출 등을 축소 신고했을 것을 의심해 수정신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카드 매출 등에 비해 불투명할 여지가 많다고 보는 것이다. 한 세무서 관계자는 “같은 업종의 평균 수준에 크게 못 미쳐 불성실 신고가 의심되는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후 검증 대상”이라면서 “그렇지만 수정신고는 강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납세자들의 체감도는 다르다. ‘세무조사’라는 힘 때문이다. 자영업자들 사이에 세무조사는 ‘털면 터는’ 존재로 여겨진다. 음식점 등 자영업의 경우 매출 대비 식자재 등을 구입한 계산서 비율이 잘 안 맞는 등의 문제 소지가 크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받다가 자칫 세금을 더 추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을 알기에 아예 대놓고 “알아서 수정 신고하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밀어붙이는 세무서도 있다. 세정 당국도 이런 관행을 인정한다. 한 관계자는 “본청과 지방청은 일선 세무서에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얘기하라’고 하지만 일선에선 징수 실적 등을 감안해 자영업자에게 협박처럼 들릴 수 있는 언행을 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세무조사 받는 게 두렵다는 것은 과세 대상 매출이 더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금 매출을 숨겼을 것’이라는 세무 당국의 의심 자체가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기 불황으로 매출 자체가 크게 줄어든 데다 정부 독려로 카드 사용이 늘고 현금영수증 처리 비중이 매우 높아져 ‘현금 매출’을 속이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자영업자 살릴 정책 필요=이러다 보니 장기 불황으로 쪼들리는 자영업자를 정부가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말 조사한 자영업자의 월평균 매출액은 877만원으로 3년 전보다 113만원이나 감소했다. 지난해 자영업자 수는 전년보다 3만600명 급감했다. 불황으로 폐업 등이 속출한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자영업자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은 1년 전보다 오히려 9.7% 늘었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세무사는 “세무조사는 우리도 피하고 싶은 부분이기 때문에 알아서 현금 매출 등을 늘려 잡자고 얘기한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거래처들의 매출 사정이 심각하게 나빠진 게 보이는데 국세청이 사소한 것까지 트집 잡으니 (거래처 사장들에게) 일일이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