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과거 만행 똑바로 알리자”… 세계 각국 나섰다
입력 2014-02-21 02:33
전 세계 각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나 강연, 학술연구 등을 통해 일본의 과거 만행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정당화, 난징대학살 부정 등 일본이 일삼고 있는 노골적 역사 왜곡 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적반하장 격으로 ‘고노담화’ 수정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 하얼빈 지방정부와 관영 CCTV는 19일(현지시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만행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731부대는 1935년부터 하얼빈에 주둔하면서 인간 생체실험을 자행한 부대다. 이로 인해 한국, 중국, 몽골, 옛 소련 출신 민간인과 전쟁 포로 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말 개봉 예정인 영화 ‘731’에는 당시 만행 관련 역사적 기록과 증인 인터뷰도 담긴다. 731부대에 의해 부친을 잃은 리 펑친(73) 할머니는 “일본 침략군이 저지른 만행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며 “그 참혹했던 역사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에 의해 원난성 쑹산(松山)으로 끌려갔던 위안부를 다룬 영화 ‘여명의 눈(黎明之眼)’도 제작이 한창 진행 중이다. 감독 뤼샤오룽(呂小龍)은 CCTV와의 인터뷰에서 “종군 위안부를 잘 모르는 중국 젊은이에게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날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에 외신기자 40여명을 초청했다. 이곳엔 일본 군국주의 최악의 악행으로 꼽히는 난징대학살의 피해자·목격자 증언록과 난징 군사법정 기록물 등이 보관돼 있다. 주청산(朱成山) 관장은 “최근 일본에서 난징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동향이 있다”고 개탄스러워했다.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연대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중·일 학자 30여명은 지난 9일 상하이사범대학에 모여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네덜란드 등 다른 피해국과도 연대 강화를 모색하기로 했다.
서구 사회에서도 일본 만행을 알리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뉴욕·뉴저지의 한인 인권단체인 시민참여센터는 올해 봄 학기부터 ‘동북아시아 역사정의 인턴십 과정’을 재개했다. 이 과정은 미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 강제 징집·노역, 민간인 학살 등 일본의 전쟁범죄 역사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예산 문제로 지난해 가을 학기 중단됐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홈페이지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후원금 8000달러(약 850만원)가 모이면서 가능해졌다.
호주에선 지난 10일 한국과 중국 교민들이 호주 전역에 위안부 소녀상을 공동 건립하기로 합의했다. 일본군 위안부 참상과 난징대학살 등을 현지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이들은 최근 잇따르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규탄하며 일본 역사 왜곡 비판, 전쟁범죄 홍보 등의 내용이 담긴 행동강령을 채택하기도 했다.
일본의 만행을 제대로 알리려는 움직임이 국제사회에서 이처럼 거세게 일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 고노담화에 대해 “학술적인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고노담화의 근거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취조사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재검증해야 하지 않느냐는 야마다 히로시 일본유신회 중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강제성을 보여주는 문서가 없다는 1차 아베 내각(2006∼2007년)의 견해를 현 내각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을 배경으로 덧붙였다.
역사 왜곡 발언도 계속되고 있다. 햐쿠타 나오키 NHK 경영위원은 이날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가 최초 제기된 이후 한국이 필사적으로 나섰지만 강제성의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햐쿠타 위원은 최근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