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테러·피살 사건 터졌는데 무조건 “괜찮다”… 안전보다 돈벌이 위험한 여행사들
입력 2014-02-21 01:33
지난 19일(한국시간) 여행경보 2단계인 여행자제지역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괴한의 총격에 숨졌다. 앞서 16일에는 여행제한지역(3단계)인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성지순례에 나선 교인들이 탄 버스가 폭탄 테러를 당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행제한·자제 지역에서의 잇단 사고에 대해 여행업체의 무분별한 영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행제한·자제 지역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무작정 관광객을 모으는가 하면 위험성을 묻는 고객에게 “괜찮다”고 둘러대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20일 한 여행사의 홈페이지에서 ‘팔라완’을 검색하자 허니문 소개와 여행 후기 등 관련 정보가 100건이나 쏟아졌다. 필리핀 팔라완은 다이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한 섬이다. 그러나 상품 안내 어디에서도 팔라완에 2∼3단계 여행경보가 내려져 있다는 사실은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외교부는 팔라완 푸에르토프린세사시에 3단계 여행제한 경보를, 나머지 지역에 2단계 여행자제 경보를 내린 상태다.
외교부는 2단계 경보가 내려진 지역은 신변 안전에 특히 주의해야 하고 꼭 필요한 여행인지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3단계 경보가 내려진 지역에서는 긴급한 일이 아닌 이상 귀국하도록 권고한다.
팔라완에 들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마닐라 등 필리핀 전 지역에도 2∼3단계 여행경보가 발령돼 있다. 필리핀에서 지난 한 해에만 13명의 한국인이 살해되는 등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지역 여행을 문의해 본 결과 다수 여행사에선 “다들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온다”면서 “시내 등을 혼자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답했다.
여행사들이 ‘황금의 나라’라는 슬로건을 달아 광고하면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 미얀마도 만달레이 모곡 지역에 3단계 경보가 내려지는 등 전 지역에 1∼3단계 경보가 내려져 있다. 만달레이를 포함한 미얀마 6일짜리 패키지 상품을 팔고 있는 한 여행사 역시 “경보 안내가 없다”고 지적하자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답했다.
휴양지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도 사정은 같았다. 사바주 동부 지역에는 2∼3단계 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살해 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지난해 11월 기존 1단계였던 이 지역의 경보 단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여행사 관계자는 “코타키나발루는 사바주 안에서도 동부와는 거리가 있어서 괜찮다”면서 무조건 안심시키려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계약 후 뒤늦게 경보 발령 사실을 알게 된 고객과 여행사 간 갈등도 잦다. 여행사에서는 취소 수수료를 내라고 요구하고, 고객은 “경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못 낸다”고 버티는 식이다. 외교부는 “취소 수수료를 둘러싼 민원이 종종 제기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배상 및 환불관련 문제에는 일절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