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는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유병록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입력 2014-02-21 01:36
인간은 사물을 대하는 순간, 그 사물에 깃든 본성이 있다고 수긍한다. 우리는 두부를 보고 부드럽거나 하얀 속살이라거나 얌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건 두부라는 본성의 심연에까지 가닿은 느낌이라기보다 재질이나 외양에서 받는 첫 인상일 것이다. 등단 5년차의 시인 유병록은 두부의 본성을 이렇게 이해한다.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부는 식어간다/ 이미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중략// 두부를 만진다/ 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두부’ 부분)
시인은 두부를 대하는 순간, 그 두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시간만이 아니라 부서지고 으깨지고 들끓다가 이제는 단단하게 서 있는 ‘나’의 사라진 시간도 거기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병록(32·사진)의 첫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창비)는 이렇듯 사물의 본질에 대한 회복의 언어를 선보인다. 그리하여 두부를 만지는 느낌은 단지 표피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혈관을 흐르는 피를 만지는 것 같은 온기에 가닿는다. 사물의 본성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개인적 경험을 겹쳐놓음으로써 유병록은 사물의 본성을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고 있다.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 개의 심장// 그러니까 붉은 달이 뜬 적이 있었던 거다 아무도 수확하지 않는 들판에 도착한, 이를테면 붉은 달이라고 불리는 자가// 계단에 올려놓은 촛불처럼, 자신이 유일한 제물인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던 거다 비명을 삼키며 들판을 지켰으나// 아무도 매장되지 않은 들판이란 없다”(‘붉은 달’ 부분)
시인은 이번에도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의 본성에 여지없이 인간의 역사를 겹쳐 놓는다. 그러니까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 때 그건 토마토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세계의 한 조각을 베어 무는 것이 된다. 잠든 사물의 본성을 흔들어 깨우는 언어의 구체적 물질성이 유병록 시의 힘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