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슈퍼아빠와 아틀라스 증후군
입력 2014-02-21 01:37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 앞에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양팔과 어깨로 지구의를 떠받들고 있는 동상이 있다. 근육질이지만 반쯤 선 자세가 퍽 힘겹게 보인다. 그리스신화 속 아틀라스(Atlas)다.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를 물어 제우스가 그런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아틀라스는 프랑스의 지도전문 출판사 이름으로 차용돼 지도의 대명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아틀라스의 처지가 가정 내 모든 부담을 한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아빠들과 비견된다면서 이들이 겪는 압박감 불안감 침울함 등의 증세를 가리키는 ‘아틀라스 증후군’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신화 속의 아틀라스는 형벌로써 지구를 짊어졌지만 요즘엔 기꺼이 짐을 지겠다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멋진 아빠, 좋은 남편을 지향하는 이른바 슈퍼아빠(Super Daddy)들의 등장이다. 입시 설명회에 아빠들이 늘기 시작한 지는 이미 한참이 됐다.
MBC TV의 오락프로 ‘아빠 어디가’도 슈퍼아빠를 지향한다. 이 프로는 아이와 아빠가 짝이 돼서 여행도 가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등 수많은 난관을 함께 겪는 동안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남자로, 아빠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요리하는 아빠, 놀아주는 아빠, 자상한 남편이라는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이미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쇼핑몰 G마켓이 3월 입학시즌을 앞두고 한 달 간 학용품, 어린이 책가방 등 신학기 준비물의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40대 남성의 구매량이 전년보다 50%나 늘어난 반면 여성의 구매량은 24%나 줄었다. 그 외 운동화 모자 등 자녀들의 패션 아이템에도 남성들의 구매량이 늘었다고 했다. 애들 학용품 등을 아빠들이 주로 골라준다는 얘기다.
자식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얘기는 다 옛말이 됐다. 이젠 뒷모습만 가지고는 성이 안 차는 모양이다. 애들 눈앞에서 진두지휘를 하거나 현장을 함께 경험하는 등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애들과 소통이 안 되는 시대다. 친구 같은 아빠, 다정다감한 아빠를 가진 애들이 사회성도 좋고 성적도 우수하더라는 연구결과(Father Effects)까지 나왔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없을까. 모두가 슈퍼아빠를 꿈꾸는 가운데 혹 그들 가운데 아틀라스 증후군이 자라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중요한 이슈들은 아예 외면한 채 우리 아이, 우리 가족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닌지. 슈퍼아빠와 아틀라스 증후군은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을.
조용래 수석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