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특별검사제도의 허와 실
입력 2014-02-21 01:37
“검찰권 행사만 공정하다면 가능하면 도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된다”
‘특’자 한 글자가 들어가면 뭔가 있어 보이고, 또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우리 사회다. 가령 정식보다는 특정식이 좀 더 맛이 있을 것 같고, 일반진료보다는 특진이 뭔가 믿음이 간다. 그런데 대개의 국민은 특자가 들어가도 별 볼 일 없이 값만 비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때로는 대학종합병원 특진 의사보다 한적한 중소도시 내과 숙련의사 의 진단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환자가 아니라면 의사의 진단이란 그게 그거다. 어차피 모든 의사가 화타(華陀)가 아닌 바에야 현대 문명의 이기인 X-레이나 내시경 MRI 등 첨단장비를 통해서 진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특자 들어가 정말 별 볼일 없는 제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특별검사제도가 아닌가 한다. 검찰만 기소권을 가지는 기소독점주의의 예외로, 검찰이 아닌 독립된 사람에게 수사 및 기소 등 검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인 특검은 말처럼 특별하지도 않고, 성과도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이다. 세계적으로 미국 외에는 도입한 국가도 없다.
정말 심각한 점은 아까운 나라 돈만 쏟아 부은 뒤 결과 발표에는 특검을 주장한 측도 반대한 측도 아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이를 주장한 측이나 반대한 측이나 사건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정략에 이용하려는 마음만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당은 특검을 반대하고 야당은 이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고리타분한 관행이 반복돼 온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김용판 특검과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혹 특검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민주당의 입장이 대세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대선이 끝난 지 오래돼 이제 선거법 위반 사범의 공소시효까지 모두 지나갔다. 이 사건을 특검에 넘겨본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는 없고, 직권남용이나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두 사건은 이미 검찰이 직접 수사를 통해 직권남용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아무 실익이 없이 정치적으로 대선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근거만 좀 더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국고를 낭비해 가면서까지 특정 정파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이 과연 국민 전체를 위해 옳은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두 사건 모두 기소가 이뤄져 1심 재판이 끝났거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법은 헌법에 규정된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중위험 금지의 원칙’을 준용한다. 이미 기소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것은 당사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로 국가형벌권의 남용에 해당한다. 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5조에 ‘누구라도 동일한 범행으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을 재차 받지 아니한다’는 원칙을 선언해 놓고 있다.
심지어 전기의자의 고장으로 사형수가 목숨을 건진 뒤 이를 다시 집행하려는 교정 당국의 행위가 이중위험 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사형수 프란시스 대 사형집행인 레스웨버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죄수의 불운까지 헌법이 책임질 수는 없다’는 이유와 함께 5대 4로 의견이 갈려 결국 사형이 집행되긴 했지만 이 원칙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는 정부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고 한 번 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판결하지 않는 원칙에도 부합한다. 기소된 사건을 수사 주체만 달리해 다시 조사한다면 다른 피의자에 비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검도 필요할 경우가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형사사건에 연루될 경우에는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의혹만 있다고 입버릇처럼 특검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물론 특검을 배제하기 위한 대 전제는 공정한 검찰권 행사다. 이런 점에서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국민은 검찰을 믿어야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