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김유나] ‘높으신 분들’ 위한 사고대책본부인가
입력 2014-02-20 01:36
지난 17일 10명의 소중한 생명이 눈 범벅이 된 체육관 지붕 잔해에 파묻혔다. 사고 직후 현장에는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졌다. 이후 구조를 담당한 경북소방본부가 현장 상황을 브리핑했다.
구조가 계속되던 18일 오전 5시 안전행정부 유정복 장관이 방문하자 현장은 분주해졌다. 강철수 경북소방본부장은 사고 발생 개요와 구조 작업 상황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5분간의 짧은 브리핑이 끝난 뒤 강 본부장은 5시40분쯤 다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허남식 부산시장이 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이날 대책본부를 방문한 ‘고위직들’을 위한 브리핑은 계속됐다.
같은 시각 빈소는 썰렁했다. 어떤 브리핑도 없었다. 사망한 김진솔(19)양의 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에 학교에 연락했지만 뉴스에서 내 딸의 이름을 보고서야 사망 소식을 알았다”며 “학교도 리조트도, 정부 관계자도 우리에게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전 7시 부산외대 총장과 교무위원들이 울산21세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에게 절을 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이성은(20)양의 어머니는 이들의 바지 밑단을 붙잡으며 “가지 마세요. 우리 딸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 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 이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빈소 복도로 나와 TV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를 접하면서 “뉴스에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왜 우리한테는 아무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나”라며 오열했다.
이날 오후에는 안철수 의원이 사고대책본부를 찾았다. 안 의원의 인기는 높았다. 경북도청 직원들은 “안 의원 신당 이름이 뭐냐” “사진은 찍었느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안 의원을 상대로 한 브리핑장은 ‘인증샷’을 찍기 위한 공무원들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사고 현장을 찾은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들, 밤새 건물 잔해를 뒤지며 구조작업을 벌인 대책본부 관계자들의 브리핑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극적인 ‘인재(人災)’였던 만큼 유가족들에게 먼저 사고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어야 한다. 사고 상황이 가장 궁금한 사람들은 ‘높은 분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유족들이다.
경주=김유나 사회부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