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근육병 장애 이겨내고 학업 매진 ‘한국의 호킹들’ 대학 입학·졸업했어요

입력 2014-02-20 01:36


중증 근육병 환자 박재현(22) 재한(19)씨 형제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다. 어려서부터 ‘진행형 근이영양증(PMD)’을 함께 앓아왔던 형제는 호흡근육이 퇴화돼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었다. 남들처럼 공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애를 이겨내고 학문에 대한 꿈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거나 새내기 대학생이 되는 근육병 환자들을 위해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소장 강성웅·재활의학과 교수)가 19일 축하행사를 마련했다. 병원 3층 중강당에서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란 제목으로 열린 행사에는 이들 형제를 포함해 근육병 환자 27명이 초청됐다.

재현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았다. 병은 그때부터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처음엔 걷기가 불편한 정도였지만 근육이 계속 빠져나가 척추까지 휘면서 걷기도 힘들어졌다. 공부를 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편견을 이겨내겠다는 각오로 공부에 매진해 대구대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혼자서는 앉거나 일어서는 것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 처지라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다.

척추뼈가 휘어 아래쪽을 볼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공부할 땐 늘 책을 높이 받친 상태에서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재현씨는 이날 “숨쉬는 것조차 노동이란 것을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남들보다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여건만 허락된다면 박사과정까지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임상심리 전문가가 되겠다고. 형과 같은 대구대 사회학과 입학을 앞둔 동생 재한씨는 문헌학과를 복수전공해 도서관 사서가 되는 게 꿈이다. 형의 영향으로 책을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다.

‘연세대 호킹’이라는 별명을 얻은 같은 처지의 신형진(31·연세대 대학원 컴퓨터과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재학 중)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전하며 같은 처지의 환우와 후배들이 학업에 정진,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격려해 큰 박수를 받았다.

김영관(23·서강대 법학과)씨는 로스쿨에 진학해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민재(19)씨는 대구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가족과 동료 환우, 의료진이 자리를 같이해 이들을 격려하고 축하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강성웅 소장은 “인공호흡기 없인 생명 유지가 힘들었던 환자들이 호흡재활 치료를 통해 스스로 호흡하며 바깥나들이를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되고 학업에도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