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의 깨알같은 글자가 개인정보 유출사고 불렀다” 금융당국, 재발방지책 마련
입력 2014-02-20 01:36
“‘우리가 다 동의해 줬다’고 하던데, 정보공개 동의서를 본 적이 있는가? 읽을 수 있던가?”(민주당 김기식 의원)
“굉장히 작은 글자로 돼 있어서….”(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사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는 금융권 약관의 ‘작은 글자’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제삼자에게 개인정보를 건넬 수 있다는 중요한 내용을 담은 약관이 과연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시원하게 표시돼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깨알 같은 글자들을 일일이 읽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미리 서류에 ‘동그라미’를 쳐 건네주는 관행도 언급됐다.
금융권의 ‘작은 글자’를 지탄하는 장면은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 동양사태 때에도 채권의 투자 위험을 설명하는 부분, 투자자의 성향을 기술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금융회사가 투자자들의 불편을 없애주듯 서명할 곳을 표시해 건네줬다는 사실은 불완전판매 시비로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창구 직원이 형광펜으로 서명할 곳을 가르쳐줬다” “안전하다는 말을 믿지, 세세하게 한줄 한줄 누가 꼼꼼히 읽어봤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금융 당국은 당시 금융투자상품 설명서를 뜯어고치는 것부터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다. 금융회사가 금융투자상품을 안내할 때 원금 손실 가능성, 투자부적격 여부 등 필수적인 전달사항을 강조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글자의 크기와 배열을 표준화하고, 색깔을 넣는 방안도 시행됐다.
이번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융 당국은 4월부터 금융회사 가입신청서에서 개인정보 제공과 관련한 부분은 약관의 글자를 키워 누구나 확실히 알아보도록 개선했다. 사안에 따라 빨간색 등 색깔을 넣어 강조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일견 단순한 개선이지만 효과는 클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은 2012년 하반기부터 전자공시시스템의 기존 보고서가 수정 공시될 때마다 정정 횟수에 따라 해당 내용의 글자 색깔을 다르게 하고 있다. 최초 수정 시에는 파란색, 2회째는 녹색, 3회째는 빨간색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후 기업이 강조하는 부분을 감지하기가 더욱 쉬워졌다”고 평가했다.
이경원 기자